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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한 그릇 Nov 06. 2023

그리스도인, 왜 부를 추구해야 하는가?

노파심에 말한다. 부를 추구한다는 말이, 어떡하든 돈을 모으려고 혈안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다(딤전 6:10). 자칫 맘몬의 우상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부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없으면 안 될 돈의 중요성을 알고, 물질의 청지기로서 잘 모으고 관리하라는 말이다. 태생적인 가난이거나 사명을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가난이야 어쩌겠느냐마는, 지나친 욕심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겪는 가난은 죄다. 물질의 청지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돈은 거룩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터부시 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 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 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 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 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19-23)



예수님은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을 같은 말로 칭찬하신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관점은 내게 얼마나 있느냐, 얼마나 남겼느냐에 있지 않다. 내게 맡겨주신 것(달란트)으로 얼마나 성실하게 남겼는가를 중요하게 보신다. 즉, ‘성실함’과 ‘이윤추구’가 핵심이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 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5:24-30)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예수님께 책망받는다. 첫째, 성실하지 못했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내게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야 했지만, 그는 땅에 감추어 두었다. 직무유기다. 둘째,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예수님이 종에게 달란트를 맡긴 이유는 보관하기 위함이 아니다. 달란트를 활용하여 이윤을 남기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 받은 달란트를 그저 땅에 감추어 두었을 뿐이다. 원금 손실이 두려웠다면 최소한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 맡겨서 이자라도 받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달란트 비유에서 달란트는 꼭 물질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모든 것이다. 물질을 비롯한 재능에 심지어 시간과 건강까지 포함한다. 물질을 잘 관리하여 이윤을 남기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다. 소극적으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고, 적극적으로는 나누고 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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