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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한 그릇 Jan 02. 2024

나라와 교회 지도자는 누가 세우는가?

몇 년 전, 사역하던 교회 청년부에서 독서모임을 했다. 선정 도서는 내가 쓴 [냉수 한 그릇]이었다. 저자와 함께 하는 토론인 셈이다. 목회자라고 일방적인 건 옳지 않다. 서로 간 소통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얼마든지 내 글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작성해 오도록 했다. 내 생각을 바꿀 용의가 있었으니 말이다. 글의 논리를 반박할 만한, 허를 찌르는 질문을 환영한다는 말로 시작한 첫 모임은 내 말에 설득당한(?) 채 모두 대만족 하며 끝났다. 그야말로 신명 나는 토론의 장이었다. 

    

한 번은 대통령은 누가 세우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한 형제가 피식 웃는다. 의도가 있을 거란 생각에 웃음이 났단다. 몇몇 청년에게서 국민이 세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 웃음에 화답하며 다시 질문했다. 담임목사는 누가 세우는 것이냐고. 목사에게서 쉽게 듣기 힘들 법한 질문에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하나님이 세우셨단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대통령은 국민이 세우는데 담임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신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나 보다. 어쩌면, 담임목사를 성도가 세운 거라고 말하기엔 믿음 없는 사람 취급받는 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동의하기 어렵겠지만…”이라는 말로 운을 띄우며, 대통령이든 담임목사든 사람이 세우는 거라고 말했다. 투표-교단마다 약간 상이하겠으나, 예장통합 교단에서는 교회에서 장로, 권사 등을 세울 때 공동의회라는 직원선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장로는 2/3, 권사는 1/2 이상을 득표해야 선출된다. 참고로 담임목사 청빙은 제직회 출석회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로써 말이다. 한 청년이 반박한다.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담임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거라고 들었단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에게 대적하여 벌 받은 것을 기억하면서 담임목사를 잘 섬겨야 한다고 배웠단다. 그를 탓할 마음은 없다. 나도 그렇게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날 청년부 설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자보다 가르친 자가 더 잘못이나, 가르침을 받는 자가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한 것을 그 자리에서 다시 언급하진 않았다.  



   

대통령이든 담임목사든 하나님이 세우신다면, 선거 유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어진다. 투표가 무색해진다. 기도할 명분조차 사라진다. 교회에서 직원 선거 기간, 특정 장로, 권사, 안수집사 후보 등을 뽑아달라고 추천하고 홍보하면서도 선거가 끝난 뒤 그들을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부노회장 선거 기간, 알지도 못하는 노회원들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남발하며 자신 혹은 교회 장로를 부노회장으로 뽑아달라며 귀찮게(?) 문자로 홍보하면서도, 선거 이후 노회장이나 총회장을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나는 이 말을 ‘강제로 하지 않는 분’으로 설명한다. 내 책 <냉수 한 그릇> 저변에 깔린 신학이다. 하나님을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인격적인 분으로 기억한다면, 인생 대부분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조차 존중하신다. 담임목사를 잘못 선택했다면, 그 고통은 성도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대통령을 잘못 선택하여 세웠다면, 요즘 말로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된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 특정인을 세워달라는 기도가 아닌, 누가 대한민국을, 한국교회를, 지교회를 사랑과 헌신으로 이끌어갈 지도자감인지 알게 해달라고 말이다. 지혜와 분별력을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 주신 지혜와 분별력으로 신중하게 교회와 나라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모든 선거 과정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개입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건 하나님 영역이니 내가 왈가불가할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지혜의 범위 안에서 판단하고 추측할 뿐이다. 작금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차라리 개입하지 않으셨다는 말이 내게 위로를 준다. 개입하신 결과가 이 모양(?)이라면 난 절망할 것이다.     


촛불이 모이면 횃불이 된다. 올바른 신학이 있어야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다.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전수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 생각하나, 여전히 내가 든 촛불 하나로는 힘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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