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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든솔 Jun 08. 2024

준비물 투성이

운동하기 참 까다롭네

  나는 지루함을 잘 견디지 못하고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사람이다. ‘이 옷 너무 예쁘다. 드디어 내 인생 옷을 찾았어!‘라며 옷에 구멍이 날 때까지 입을 것 같다가도 두어 달이 지나면 옷장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고, ‘이번 시즌 EPL은 전쟁이야! 전부 챙겨봐야지!’ 결심하고 스포츠 채널을 정기결제하면, 두어 달 뒤에 카드값 고지료를 통해 구독 사실을 다시금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4년이나 이어오고 있다는 건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굉장히 지루한 운동이다. 팀원들과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어디로 공을 보낼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과는 달리 ‘딱 열개만 들어 올리자’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두 시간을 보낸다. 그런 운동을 하루에 한두 부위씩(늦잠을 잔다면 한 부위만),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주기로 반복한다. 예를 들면 월요일엔 가슴과 이두 운동, 화요일엔 등과 삼두 운동, 수요일엔 어깨운동, 목요일엔 휴식이다. 그리고 금요일부턴 다시 가슴과 이두 운동을 시작한다. 늦잠을 자거나 약속이 생기는 날에는 헬스장에 가지 못할 때도 있지만 하루 이틀정도 뒤로 밀릴 뿐 큰 변화는 없다. 이렇게나 지루한 행위를 계속 이어하는 걸 옷장에 처박혀있는 옷과 내가 응원하는 EPL팀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큰 배신감이 들까.


 하지만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다. 1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몸을 보며 억지로나마 지루함을 꾹꾹 누르고 있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운동에 지루함이 순식간에 터져 나오고 만 것이다. 의무감에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긴 했지만, 평소대로 바벨을 들어 올리는 시간보다 러닝머신 위에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다행인 점은 '어떻게 해야 내가 다시 운동에 흥미를 붙일 수 있을까'란 일말의 양심은 남아있었다는 것. 지루함을 타파하기 위해 새로운 분위기를 내기로 결심했고 쇼핑을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운동복과 모자를 구매했고, 고수처럼 보이는 수많은 관절 보호구들을 장만했으며, 여러 종류의 운종 보조 식품들을 주문했다. 역시 돈 쓴 보람이 있었고 그날부터는 헬스장에 가는 발걸음도, 머무는 시간들도 즐거웠다.


 그렇게 몇 달간 난 과금한 게임 유저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고 헬스장을 누볐다. 진짜인지 착각인지는 몰라도 몸도 효율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웨이트 트레이닝의 즐거움이 찾아왔지만, 꽤나 심각한 부작용도 함께 왔다. 거울 보며 운동할 때 기분 좋은 멋진 옷, 운동 전에 섭취할 충분한 양의 카페인과 아르기닌, 관절을 보호할 보호구 중 한 가지라도 준비가 되지 않은 날에는 운동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넓다. 사람들에게 우주의 광활함을 설명할 때 짓는 그들의 표정이 말해준다. 나조차도 우주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내가 그은 우주의 경계선을 이야기할 때면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요" -칼 세이건


 이렇게나 방대한 우주라면 우리를 제외한 또 다른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 어딘가에는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외계생명체에 대한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천문학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외계생명체를 찾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쉬워 보이진 않는다. 생명체를 찾을 만큼의 관측 기술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우주환경의 대부분은 생명체에게 매우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아무런 준비 없이 우주공간에 내던져진다면 대기가 없어 숨도 쉬지 못할뿐더러 압력차로 인해 신체에 심각한 손상이 일어난다. 뿐만 아니라 극심한 추위와 우주 방사선으로 인해 빠르게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을 또 다른 생명체라니, 극히 드문 확률이 아닐까.


 생명체에겐 너무도 가혹한 우주와 까다로운 환경이 주어져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생명체. 이 둘의 접점을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일일 테지만, 우주라는 사막에서 찾은 바늘이 바로 지구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중요한 조건들을 갖춘 보금자리다.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적당한 온도'는 필수적인데 지구는 태양에서 많이 멀지도, 그리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다. 만약 해왕성처럼 아주 먼 곳에 있다면 -200도보다 낮은 얼음 행성이 되었을 것이며, 수성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면 태양의 직사광선으로 인해 400도가 넘는 오후를 보내야 할 것이다. 별 근처에서도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곳, 물이 액체 상태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을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지구는 정확히 그곳에 위치해 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물과 대기 역시도 지구 생명체가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우주에선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생명체지만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춘 지구 덕분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모두 채워져야만 비로소 지루한 운동을 해낼 수 있는 나처럼, 생명체 역시도 여러 조건이 갖춰진 곳이어야만 혹독한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The Pale Blue Dot(창백한 푸른 점) ⓒNASA / 태양으로부터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난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첫 데이트에 나가는 사람처럼 멋지게 치장하고 운동 보조제를 잔뜩 섞은 물통을 흔든다. 그리고 바벨을 들기 전에는 보호대를 빠짐없이 칭칭 감아야 비로소 '운동 준비 완료' 상태가 된다. 멋진 운동복보다는 '헬스장에서 제공하는 옷을 입어도 꽉 끼는 근육'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친구의 말도, "그 정도 무게밖에 안 들건데 보호대까지 필요해?"라며 의문을 품는 친구의 말도 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지루한 헬스장을 견디기 위한 내 최소한의 조건들이다. 생명체가 혹독한 우주를 견디기 위해 여러 조건들이 필요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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