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감정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이목 Jun 22. 2024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살아야 한다는 것 1

산다는 것

1. 산다는 것


남쪽의 작은 항구를 두고 있는 고양이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마을, 아빌에는 봄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가웠던 바람도 따스한 향기를 품은 해풍으로 바꿨고 사람들과 고양이들도 항구 주변을 오가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고 곳곳에서 힘찬 소리들이 들려왔다. 정오가 되자 푸른 하늘에는 태양이 반짝였다. 오랜만의 반짝이는 초봄의 태양이었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속마음을 품고 있든 간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 빵집에서 일하는 아가씨인 모메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는 봄을 맞으면서 열아홉 살이 되었다. 모메는 밝고 명랑한 아가씨였다. 감정이 풍부했고 심각하거나 깊게 생각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기쁨이 오면 기쁘고 슬픔이 오면 슬펐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쁨이나 슬픔에 대해서 느끼기만 할 뿐, 거기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탓에 그녀는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늙고 병이 들어 부쩍 심통을 부리는 고양이 할아버지인 루드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드는 아빌에서 가장 나이가 든 고양이들 중에서 가장 몸이 좋지 않은 고양이였다. 그래서 항상 인상을 찌푸리고 침대에 누워서 모든 것들에 화를 냈다. 겨울이었을 때에는 매서운 바람이 유리창을 긁어댄다며 화를 냈고 눈이 왔을 때에는 눈이 창문을 가린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이제 봄이 왔으나 루드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정오의 지나친 태양빛이 따끔 거린다며 화를 낸 것이다. 루드는 또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옛날에 루드는 손녀인 모메가 아직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때에는 열심히 일을 했었다. 루드는 화가였다. 마을의 간판이나 배의 갑판에 온갖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부터 몸이 좋지 않아 져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졌다. 하루에 몇 번이나 오고 가던 항구를 더 이상 갈 수 없을 정도로 아프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루드는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 뒤로 루드는 점차 변해갔다. 살아가는 것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프기 전에는 산다는 것에 별다른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그저 그림을 그리고 이따금씩 곰곰이 어떤 생각에 잠길 뿐, 산다는 것을 느낀 적도 없었다. 당시의 루드에게는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생각할 수조차 없는 작은 일이었다. 누구나가 산다. 거기에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러나 지금의 루드에게는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면 온몸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 아픔이 찾아왔다. 통증은 루드가 아침으로 수프와 모메가 만든 빵을 먹고 점심으로 작은 청어구이를 먹고 저녁으로 모메가 구운 감자를 먹을 때까지 함께 했다. 그리고 아픈 하루를 끝내고 루드가 침대에 누워 잠을 들고서야 서서히 떠나갔다. 창밖의 어둠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면 저 멀리서부터 햇빛의 밝은 빛줄기와 함께 아픔은 루드가 일어나길 기다렸다가 루드가 눈을 뜨자 다시 그에게로 붙었다. 루드는 지긋지긋했다. 낯선 것에는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는 법인데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루드는 우울했다. 울적한 마음으로 모메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때, 문득 질문을 했다.

“모메야. 너는 어떻게 지내니?”

“응? 잘 지내고 있어.”

모메가 어리둥절하게 답했다. 모메의 눈이 빛나 보였다.

“너는 산다는 것이 좋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모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의사선생님하고 마주쳤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한데.”

“뭐? 입원?”

모메의 말에 루드는 당황했다.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루드는 병원을 싫어했다. 병원의 하얀 벽과 작은 침대가 싫었다. 병원의 창문도 싫었고 의사들도 싫었다. 어쩌면 화가 나서 싫어진 건지도 몰랐으나 루드는 수염을 잡아 뜯었다.

“입원은 무슨! 지금도 잘 지내고 있는데”

루드가 소리쳤다. 모메가 미소를 거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할아버지에게 다가왔다. 낮동안 빵을 만드느라 따뜻해지고 다소 거칠어진 작은 손에는 버터향이 났다. 모메는 할아버지의 푸석푸석한 볼에 손등을 갖다 댔다. 차가웠다.

“할아버지 너무 걱정 돼. 점점 차가워지고 눈도 회색이 되고 있어. 원래는 새까맸는데......”

“늙어서 그래!”

“화도 자주 내고......”

“아! 글쎄 늙어서 그렇다니까!”

루드는 역정을 냈다. 모메의 표정이 슬퍼졌다. 모메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것을 루드도 알고 있어서인지 루드는 소리를 지른 것이 갑자기 미안해졌다. 뭐라 말을 하고 싶었다. 손녀의 걱정을 떠나가게 해 줄 어떤 말을, 따뜻한 빵과 같이 부드러운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답답했다. 아픔이 쿡쿡 찔렀다. 루드는 몸을 부여잡고 힘없는 야옹 소리를 냈다. 모메가 자리에서 일어나 루드를 껴안았다.

“할아버지! 괜찮아?”

“괜찮아.”\

모메는 루드를 안고 들어 올려서 침대까지 데려다주었다. 어느새 모메는 루드보다 훨씬 커진 것이다. 자신이 작아진 게 아니었다. 루드는 모메의 품에 안겨서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그 어떤 아픔도 없었다. 그러나 슬픔이 있었다. 루드는 손녀의 얼굴에 슬픔을 준 것이 마음 아팠다. 요즘 들어 루드는 항상 모메에게 슬픔만 주었다.

침대에 누워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잠에 들 때까지 모메는 옆에 앉아 있었다. 루드는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원래 마음이란 미안함이 들면 들수록 약해지는 법이다. 미안함이 든 대상이 소중한 사람인 경우에는 더욱이. 창밖에는 달빛이 드리워있었다. 한때 루드는 달빛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과 고양이들이 집에 들어가 하나둘씩 잠을 청하면 세상에는 오직 루드와 달빛만이 있었다. 고요하게 흐르는 미풍을 수염으로 느끼며 루드는 가만히 앉아서 달빛을 바라봤다. 별들 사이에서 빛나는 푸른 달빛, 남색의 주끈깨를 가진 둥근 달빛, 수줍어하면서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는 귀여운 달빛을 보며 루드는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아왔던지 루드는 창밖에 살짝 비치는 달빛을 보며 수심에 잠긴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모메를 바라본다. 모메는 얼굴을 팔꿈치에 대고 졸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도 주끈깨가 있었다. 촛불의 불빛에 주끈깨가 별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루드는 한 손을 들어 모메의 머릿결을 살짝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졸린 루드의 눈을 스르르 감기게 만들었다. 잠에 들면서 루드는 모메가 슬프지 않기를 바랐다. 산다는 것은 아픈 것이다. 슬픈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각자의 하루를 시작하며 항구를 열심히 오고 가는 고양이들과 사람들도 속마음에는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지는 않을까? 힘찬 소리를 내고 일을 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그들에게도 고민이 있을 테고 속으로는 고민 때문에 아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할 수도 있다. 때로는 너무 바빠서 아프거나 슬퍼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달빛은 있을 것이다. 루드에게 모메라는 달빛이 있듯이 그들에게도 달빛이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궁을 걸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