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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카이브 Jan 29. 2024

한강에 담긴 기억은

열여덟, 반쪽 어른의 기억

언젠가는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어른이 될 테지만

난 오늘은 숨을 쉴래요  


대학교 1학년 시절, 매일 2시간씩 마치 거북이처럼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지하철로 한강을 스쳐다니다 보면 어느새 학교였고, 또 어느새 집이었다. 매일같이 서울로 등교하고 또 서울의 학교를 다니지만, 나의 마음은 아직 우리 집 앞에 흐르는 작은 탄천에 있었다. 처음 들었던 전공 수업도, 동네 친구처럼 편하지 않은 대학에서의 인간 관계도 나에겐 어렵기만 했다. 어딜 가든 낯선 서울은 그렇게 나에게 어려운 곳이었다.


나에게 서울의 색은 어두웠다. 마스크로 반쯤 가린 얼굴로 학교에 있는 잠깐의 순간조차도 어색하기만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이 넓은 곳에서 나만 겉도는 사람 같았다.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애매한 나이에 붙어버린 어른이라는 이름표 역시 아직 낯설었다. 마치 만 18세의 스무 살 체험기, 이런 것 같았달까. 그들의 물은 쓰기만 하고, 낯선 사람들과 애써 웃으며 앉아 있어야 하는 술자리도 싫었다. 난 집에 가려면 2시간은 더 가야하는데⋯ 소란스러운 술자리에서도 나는 막차 시간을 확인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시절에 나는 밴드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리를 가득 채울 때면 날것의 가사와 가득 차는 악기 소리만이 그걸 멈춰주었기 때문에.


매일 잠깐의 위태로운 서울 살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게 한강 위를 지나갈 때면 편안해졌다. 가족들과 함께 산책한 기억도,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러 갔던 기억도 있던, 유일하게 나에게 익숙한 서울이어서 그랬을까? 한강은 나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주기도 하고, 언젠간 한강이 잘 보이는 곳에 집을 사겠다는 치기 어린 다짐을 하게 해주기도 했다. 한강은 그런 곳이었다. 서울이 나에게 차가울 때, 한강만은 내게 따뜻했다.




그토록 어색했던 곳이

이젠 나의 집이 되고

그토록 너무 컸던 서울이

이젠 내게 작게 보여  


한강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준다는 점이 고마웠다. 고요한 한강 앞에서 나는 단 한 순간도 그대로이지 않겠지만, 늘 그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의 위안이자 안식처. 물론 한강은 동의한 적 없는 사실이지만, 내 모든 걸 털어놓아도 될 것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달까?


한강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강 앞에 서면 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정을 꾸며낼 필요도 겉모습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기에. 그래서 나를 발가벗겨 주는 한강이, 또 한강 앞 날것의 내가 좋다. 잠들지 않는 도시의 불빛 속 칠흑같이 어두운 수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면, 머릿속을 채우던 복잡한 생각도 점차 실마리를 찾아간다.


어느덧 나는 이 곳이 익숙해지고 있고, 서울은 실제로 내 집이 되기도 했었다. 또 그간의 변화라면, 더이상 나는 밴드 음악을 듣지 않는다⋯ 처럼 드라마틱한 일은 없었고(밴드 음악은 어느새 내 일상이 되었다.) 난 이 낯선 곳에서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재밌고 이상한 일’을 찾아나가고 있다. 어른의 이름표 역시 제법 자연스러워 졌다고 생각한다. 아직 모든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항상 나를 조용히 반겨주는 내 오랜 친구같은 한강이 그대로 있는 한, 나는 마음 편히 이륙 준비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靑春에게  


스무 살의 나를 위로하던 한강을 밝히던 노을이 올해의 서울색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위가 찾아올 무렵 해질녘을 물들이는 분홍빛. 이제 서울의 이곳저곳에서 그 빛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따뜻한 분홍이 또다른 방황자에게도, 또다른 청춘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꾹 참으면 언젠가 다 지나갈거라는 무책임한 위로를 전하고 싶진 않다. 가벼운 말로 다 아는 척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쉽고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당신에게도 언젠가 이 서울이 포근해지길. 물론 아직 적응중인 나에게도! 이렇게 앓아가다 보면 세상을 알아가게 되는 거겠죠? 행복하세요 청춘.


ps. 해가 지기 전에 한강에 가보세요.

   그 곳에서 노을을 찾고, 달빛에 비치는 윤슬도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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