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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씨 Mar 29. 2024

습작 1부

[여자]


이곳은 갯바위다. 

한 사람 정도 발 디딜 수 있을 정도의 면적이, 

지금의 내 입지와 같아서 서글프다.

하지만 내 결정은 옳다.

후회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이어지는 삶은 무가치하다.

다행이다. 

그때와 달리 이번 결정만큼은 정답이어서...




[30분 전 남자]


어쩐지 오늘은 일진이 사납다. 

"칵~퉤~!!

대낮부터 술 처먹고 아무 데나 싸지르고 지랄이야"

취객이 쏟아낸 토사물을 치우며 남자는 생각했다.


잠시 후 시외버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토해놓고 사라지자 

한 사람의 승객이라도 잡으려는 택시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자가 보인다. 무리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4월이라 해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한데 

여자는 시폰소재의 원피스를 단벌로 입고 있다. 

마치 명화에서 본 듯한 아름답고도 몽환적인 꽃그림이 프린팅 된 옷으로, 

영혼이 사그라진 듯한 텅 빈 눈과 

사나흘은 섭식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틀림없는 듯한 파리한 얼굴색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뤄 

더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느낌이 안 좋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의 이미지와 상반된 

낡은 흙색 보스턴백이 그렇다.


무엇보다 저 눈...

차라리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텅 비었다.


저 여자는 지금 죽어있다.


급기야 몸의 숨을 끊기 위해 자리를 찾고 있다.


일 년에 두어 명 저런 손님을 태우지만 

상관한 적 없다.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도 싫지만,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존중'한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 그냥 해변 따라가 주세요.."


"...'



해안 도로를 따라 움직인다. 


남자는 목적지가 명확해서 이 일을 한다.


어디서부터 난 지 모르는 

태생적 무지로 인해 

어디로 가는지는 정확히 아는 

이 일이 좋다.


끝이 있고, 그 끝을 안다는 점으로

시작의 한계를 극복하려 드는 남자다.


그런데 

여자가 그 흡족함에 흠집을 내려한다.

남자는 불안하면서도 못마땅한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해변 도로를 달린다.


"여기.. 여기에요.. 여기 세워주세요"


여자가 말한 곳은

테트라포드가 쌓인,

바다 구경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손님, 여기는 버스도 없고, 택시도 안 잡힙니다.

곧 있으면 해 질 텐데요."



".. 괜찮아요.. 남편이 올 거 에요. 

여기서.. 남편을 만나기로 했어요"


"..."


"내려주세요"


"13,000원입니다."



여자는 거스름돈을 받고 택시에서 내린다.

뒤꿈치를 살짝 들고 걷는 독특한 발걸음으로 인해 

마치 모래 섞인 땅에서 춤을 추는 듯, 

날아가는 듯, 

여자는 그렇게 느릿느릿 바다로 향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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