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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씨 Apr 05. 2024

습작 2부

2.


남자는 차를 돌렸다.

저 멀리 갯바위 위에 선 여자가 점처럼 보인다.


젠장..

이번엔 왜 안되지?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 손님을 태우고

잊으면 그뿐이었다.


남자는 여자에게로 달려가며 이유 따위 잊어버리고

지금에 집중하기로 한다.



첨벙..



급격히 가라앉는 여자의 다리 밑으로

가방이 보인다.

그 가방과 여자의 허리 사이로 줄이 연결되어 있다.

마치 탯줄 끝에 매달린 아기가

여자를 끌고 바닷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 같은

모양새다.


지독하다..

이렇게까지 할 건 또 뭔가?


남자는 여자를 가까스로 잡아챈다.

힘겹게 뭍으로 끌어올린다.

의식 없이 축 쳐진 여자는 숨을 쉬지 않는다.

거칠지만 군더더기 없는 남자의 손길이 여자의 가슴께에서 춤을 춘다.


가까스로 터진 숨결을 확인한 남자는

조심스레 여자를 안아

차로 향한다.

그리고

익숙한 곳으로 차를 몬다.


용포상회다.





3.


눈을 떴다.

동일한 패턴의 무늬가 빛바래져 있다.

천장의 벽지다.



"정신이 드나?

.. 뭐라도 좀 묵어라. 물귀신 되기 전에  굶어 죽겠다"


노란 장판, 스텐으로 된 작은 밥상, 된장찌개와 조기,

톳무침.. 그리고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



"... 뭘 멀뚱하니 보고 있노. 얼른 일어나서 묵어라. 죽는 것도 다 힘이 있어야 하는 기라"



살았구나..


누구지? 왜...


그때 한쪽에서 걸쭉한 인기척이 들린다.


"죽으려면 산을 가든가 차도로 뛰어들던가 할 것이지

뭣한다고 이런 깡촌까지 와서 민폐요? 민폐가"


"손이 없드나?"


"누구 때문에 재수 옴 붙었는지 웬 죙일 죽치고 앉았다 일찍 파하고 들어왔수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목소리..


여자는

모로 눕는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꼬박 이틀을 잠들었다.

따가운 햇볕이 남자의 말을 전해주는 비둘기처럼

얼굴 위로 내리쪼였다.



여자는 눈을 뜨고 이불을 정리한 뒤

조용히 나가

술을 반주 삼아 파는 가게에서,

노련하고도 투박하게 손님을 대접하는

할머니의 일손을 도왔다.



"누고? 이 이쁜 처자는?"


"사람 쓸 리는 없고 누군교? 할머니 숨겨놓은 늦둥이 딸인갑제?"


"쉰소리할 거면 내 밥묵지 말고 가라.

..니는 정지에 들어가서 그릇이나 부시라"


여자는 초가집에나 있을 법한 아궁이가 놓여있는 부엌으로 가 말없이 쌓인 설거지를 한다.

한 차례 몰아닥친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할머니가 예의 그 스테인리스 밥상을 받아 왔다.



"밥 묵자."

"..."


"벙어리가?"

"..."


깊은 한숨을 쉰다.



"다.. 지나가니라.. 다른 이는 뭐 별거 있는 줄 아나?.. 다 그래 산다. 그저 용쓰며 버티는 거지  별 수 있나?


.. 고마.. 괜찮다.."



목구멍에 걸렸던 독사과조각이 튀어나왔다.

숨구멍, 울음구멍을 그토록 막고 있어

여자를 진공상태로 만들었던

빌어먹을 조각이 뽑혀 나오는 순간

도저히 사람 몸에서 나온다고 볼 수 없는 울음소리가

여자의 몸통을 울리며 비집고 새어 나왔다.


"으으으..."


여자는 울고 또 울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애가 끊어질 듯이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수많은 울음을 토해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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