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함께 버틸 사람 한 명을 데려온다는 것
폭풍 성장기 조직에서 팀장 역할을 맡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식은 대개 이런 것이다.
“유능한 사람을 최대한 많이 데려오는 것.”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조금 다른 공식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팀의 컬러와 조직의 맥락 사이에서
함께 버틸 사람을 찾고, 선별하고, 균형을 설계하는 일”
이 글은,
그 균형을 고민하던 어느 성장기 HR 팀장의 ‘삼고초려’ 기록이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당시 그 회사 HR은 늘 설명해야 하는 부서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눈으로 볼 수 있게 설명' 해야 했고,
어떤 팀원은 '시키는 일만 하겠다'고 했고,
어떤 팀원은 “모든 것을 구구절절 설명해줘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이런 구성 안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과제를 처리하려다 보니,
나는 ‘한 명’이 간절해졌다.
당장은 왜 필요한지 꼼꼼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본인이 파악한 현황을 토대로
지식과 경험을 묶어 초안을 뚝딱 만들어 주는 사람.
물론, 충분히 설명하고 합을 맞춰서 일이 진행되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성장기 HR은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때마다 팀장이 모든 것에 앞단부터 매달리면
조직은 금방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서 필요했다.
“나중에 설명해주겠지”라는 믿음으로
일단 함께 뛰어줄 수 있는 사람.
특히, 갑작스럽게 메시지를 보내도
“네, 일단 여기까지 해볼게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동료 한 명.
나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컨설팅 펌의 후배가 떠올랐다.
그 친구가 떠오른 이유는 단순했다.
첫째,
회사 구조가 ‘일반적인 HR 경험자’에게는 너무 거칠었다.
정갈하게 정비된 인사 시스템 안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이거나,
규모가 비슷한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들 환경이었다.
제도는 바닥부터 만들어야 하고
(과거 부채에서 비롯된) 크리티컬한 조직 이슈는 매일 터지고
경영진의 기대와 현실 사이 간극은 크고
“일단 해보자”, “일단 우리가 이해하자”는 말이 너무 많이 필요한 곳
이건, 적응형이 아니라 개척형 HR이 필요한 회사였다.
둘째,
그 친구는 빠르게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컨설팅펌 재직 시절, 짧은 시간 안에 현황을 정리하고
최소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내용의 초안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여러 번 확인해왔다.
셋째,
성격적인 면에서도
다이나믹한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타입이었다.
내가 갑자기 업무지시를 해도 “왜요?”보다
“네, 일단 해볼게요.
나중에 전체적인 그림 한 번 더 들려주세요.”
가 일상인 친구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반적인 HR 커리어를 가진 누군가를 새로 뽑는 것보다,
이 친구와 한 번 더 같이 뛰어보는 게
이 회사에는 훨씬 맞겠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그 친구가 바로 “좋아요, 갈게요”라고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나는 회사에 대해 꽤 진지하게 설명했다.
회사의 비전과 성장 속도
HR 담당자로서 성장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
현실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 자리인지
나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하게 된 당시 그 친구의 감상은 이랬다.
“누구에게나 하는 좋은 말 같았어요.
‘저에게만 하는 제안’이라는 확신이 안 들었죠.”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았다.
나 역시 간절하긴 했지만,
그 간절함이 “당신이었으면 좋겠다”라는 형태로
온전히 전달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만남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 친구 말대로,
“다른 사람들한테도 같이 하는 제안일 수 있겠다”는
느낌을 남긴 채.
두 번째 만남은 조금 더 진지했다.
그 친구가 던진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왜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이 환경에서 제가 잘할 수 있다고 진짜 믿으세요?”
“제가 합류해서 잘 못하면 팀장님께 정말 죄송할 것 같아요”
나는 그 질문들이 고마웠다.
그냥 “한 번 가볼까?”가 아니라
서로의 fit을 진짜로 확인하려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왜 이 회사의 HR 환경이 ‘정갈한 HR 경력자’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는지
왜 이 친구의 성향과 경험이 여기서는 강점이자 생존 전략이 되는지
내가 팀장으로서 이 친구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단순한 “일손 보태기”가 아니라 팀의 컬러를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라는 점
그렇게 서로의 고민과 기대를 오가는 대화를 하다 보니,
우리 둘 사이에서 조금씩
“같은 그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이제 마음을 어느 정도 굳힌 상태에서 이야기했다.
회사의 실제 분위기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
당분간은 얼마나 자주 밤과 새벽을 마주하게 될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이었으면 하는지
이 과정에서
나는 더욱 더 솔직해지려 애썼다.
만약 이 친구가 합류했는데 Fit이 맞지 않아
함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날 것 그대로 말하면,
이 회사는 지금 단계에서
‘예쁘게 HR 잘해본 사람’이 오면 버티기 힘든 조직이에요.”
“제가 당신을 계속 떠올리는 이유는,
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HR의 모습과,
당신이 가진 성향과 경험의 교집합이
꽤 크기 때문이에요.”
사실, 그 친구보다 일을 더 잘하는 멤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회사의 성장 단계와 맥락을 놓고 봤을 때,
“가장 잘 버틸 수 있는 사람”
“함께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
을 떠올렸을 때
계속해서 그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아예 모르는 사람을 채용해서
처음부터 서로를 알아가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그래도 한 번은 같이 뛰어본 사람과
더 깊게 맞춰가는 편이
훨씬 빠르고 안전하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절박했다.
“이 팀이, 이 회사의 폭풍 성장기를 버텨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을 데려오고 싶다”
는 마음이었다.
이 과정을 지나고 나서,
나는 인하우스 피플팀장 역할에 대해
비로소 온 몸으로 경험할 준비가 되었던 것 같다.
팀장을 한다는 건
“유능한 사람을 많이 모으는 일”이 아니라,
“팀의 컬러와 조직의 맥락 사이에서 조합을 설계하는 일”에 더 가깝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회사에서는
이미 있는 구조 위에 색을 입히는 리더십이 필요하고,
시스템이 거의 없는 성장기 회사에서는
구조를 깔면서 동시에 컬러를 만들어 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팀장은 “누가 더 뛰어난가”를 넘어,
이 환경에서 누가 끝까지 버티며 함께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어떤 조합으로 있을 때 가장 건강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는지
팀의 컬러가 조직 전체 맥락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를 계속 고민하는 자리라는 걸 조금씩 실감하게 되었다.
이 경험을 지나고 나서
나는 리더십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고 싶어졌다.
리더 개인의 리더십 스타일
팀원들의 조직행동 특성(예: 성향, 일하는 스타일, 스트레스 반응)
팀 단위의 팀워크와 심리적 안전감 수준
이걸 ‘감’으로만 느끼지 않고,
한 번쯤 데이터와 언어로 꺼내볼 수 있다면
팀을 구성하고 영입을 고민할 때
조금 더 선명한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 나는,
리더십 진단, 조직행동특성 진단, 팀워크 진단 같은 도구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예전에는
“컨설턴트로서 고객에게 제안하기 위한 도구”였다면,
지금은
“리더와 팀이 스스로의 조합을 이해하고
‘함께 버틸 사람’을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언어”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나를 세 번이나 고민하게 만들었던,
그러면서도 결국 함께 와준 그 친구가 떠올랐다.
새벽까지 울다가도 같이 웃을 수 있었던 시간,
설명은 나중으로 미뤄도 일단 함께 달려주던 사람,
팀의 컬러와 회사의 맥락 사이에서
함께 줄타기를 해줬던 동료.
혹시 지금,
당신도 (팀장으로서) “함께 버틸 사람 한 명”을 떠올리고 있다면
이렇게 제안해 보고 싶다.
이 팀의 컬러는 무엇인지
이 조직의 맥락은 어떤지
그 사이에서 지금 필요한 건 “이미 잘 정리된 사람”인지, “거친 곳을 함께 뚫고 나갈 사람”인지
그 사람과 함께 버티고 싶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사람의 리더십, 성향, 팀 안에서의 역할을
한 번쯤 데이터와 언어로도 들여다보면서
조금 더 단단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사람과 조직 사이에서,
함께 버틸 사람 한 명을 데려온다는 것은
결국 “어떤 HR/리더가 되고 싶은지”를 동시에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