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

2025년 01월 28일

by 손영호

아이들의 양육에 있어 아내와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율성이다.


아내 또한 자율성을 중요시하지만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나는 그러한 강제성이 자율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만을 강요할 수 없기에, 아이들과 합의해서 일상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페널티를 정하고 적용해 보았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그 규칙들을 지키지 못하였고, 나와 아내도 그 시스템 운영에 충실하지 못하였다. 그런 이유로 모든 것이 흐지부지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점은 바로 감시와 통제이다. 아이들과 부모가 협의를 해서 규칙과 페널티를 정하고 시행하는 과정 자체가 자율성이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행동을 규칙을 기준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자율성이란, 그 어떤 강요나 강제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옳고 바람직한 길을 가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을 방임하지는 않는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말들을 해준다.


그러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이성의 힘이 충분하지 않기에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영국 주재원 시절, 아내가 한 현지인 가정에서 경험한 일이다. 그 가정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등교시간이 임박한 상황에서 양말을 신지 않고 있었고,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양말을 신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런 것이 통제도 강요도 아닌 말 그대로 진정한 자율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스스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양말을 신지 않고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학교에 지각을 하더라도 스스로 양말을 신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암묵적 메시지를 주며 기다렸다.


내가 이런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중요성이다. 통제와 억압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이 세상과 사람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반면 자율성이 기반이 된 양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은 타인에게도 자율성의 관점에서 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부족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사람은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고 훌륭해지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시행착오의 과정 속에 스스로 자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족에서도 사회에서도 사람을 대할 때 자율성은 너무도 중요한 정신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주고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것, 그것이 자율성이며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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