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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Oct 02. 2023

수치심의 근본 원인

평소 일상 생활을 잘 영위해나가고 사회 생활도 원만하게 잘 해나는 사람들 중에, 마음 밑바닥에 우울감을 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 눈에는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충분치 않다고 느끼며, 행복이라는 감정이 손에 도통 잡하지를 않습니다. 이런 우울감, 열심히 살았는데도 행복하지 않고 행복이 무엇인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안의 수치심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안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연인과 헤어졌다거나, 직장을 잃었거나, 크고 작은 일들이 겹쳐 힘든 상황이라면 누구나 우울감을 느끼죠. 하지만 외적인 요인이 해결되거나 이미 상당 기간이 지났는데도 자꾸만 동기 부여가 안되고, 스스로 주눅이 드는 기분이 들고, 사람들과 대면하기가 싫고 자꾸 피하게만 된다면, 우울감이 내면화되어 내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이때 우울감을 지속 시키는 메커니즘 중 하나가 바로 수치심입니다. 수치심 (Shame)은 참 오묘한 감정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남들 보기에 민망하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때 수치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양 심리학에서는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조금 다르게 사용합니다. 수치심이란 "나에게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를 일컫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한 질문에 대해 틀린 답을 내놓았을 때, 공부를 안 해서 답을 못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이는 죄책감이라고 하지만, 나라는 인간 자체가 한심하고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 이는 수치심이라고 합니다.


나라는 인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걸까요. 이런 생각은 대체로 보면 객관적인 현실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기본 생각 때문에 조금 덜 한심해지기 위해, 조금 덜 부족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여 사회적으로 꽤나 성공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보면 스스로 행복하지가 않고, 자신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번아웃에 이르는 경우도 많고, 나의 욕구는 뒤로 한 채 오직 타인의 욕구에 맞추어 행동해가는 부적응적인 삶의 양식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양 심리학에서는 수치심이 근본적으로 애착 트라우마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성인이 되기 전, 어린 시절, 어린 아이에게는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이 생명과도 직결되도록 우리 인간은 진화해 왔습니다. 아이는 부모와의 연결감을 형성하기 위해 울부짖고 난동을 부리기도 하고, 부모가 사랑스러워할 만한 행동들을 본능적으로 파악하여 해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욕구에 충분히 공감해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일관성 없이 심하게 나무라거나 신체적으로 학대한다면, 아이는 양육자와의 연결감을 갈망하면서도 양육자로 인해 괴로운 갈등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아이는 연결감을 잃지 않기 위해, 부모에 대한 두려움이나 원망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려 내면화하기 시작합니다. 부모를 원망하면 생명과도 같은 연결감을 포기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스스로에 대한 원망은 수치심으로 굳어집니다. 수치심은 어렸을 때에는 부모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모두 맞추어 나가기 위해 달려가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애착을 안정적으로 형성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잘 파악해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항과의 조화를 이룩해내는 법을 알지만, 애착 트라우마로 인한 수치심을 안고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주변의 요구 사항에 그때그때 자신을 끼워맞추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기에 바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 안의 수치심에 대해 우선 알아차려야 합니다. 외적인 현실과는 달리 스스로 가치 없는 인간이라고 느낄 때에는 자기 자신의 욕구를 한번 들여다 보고, 또한 친한 친구를 대하듯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부드럽고 인정 있게 대하는 연습을 일부러라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가 해주지 못했던 따스한 위로의 말들을 어른이 되어서라도 스스로 해줄 수 있다면, 평생을 충분해지기 위해 노력하느라 허비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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