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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Apr 06. 2024

자기 버림(Self-abandonment)을 하는 이유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합니다. 안부를 묻거나, 맛난 음식을 대접하거나, 긍정하는 말을 해주기도 하죠. 시간과 노력과 자원을 들여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나 자신에게도 그럼 똑같이, 일기를 쓰며 스스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맛난 것도 사먹이고, 스스로 긍정하는 말을 반복할까도 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행동을 스스로에게 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노력이 순간적으로 기분을 업시키기는 해도 결국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기분이 금방 다시 다운되는 걸 느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나 자신과 하루종일 붙어다닙니다. 나는 나로부터 한 순간도 떨어질 수 없으므로, 매 순간순간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게 됩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10분간 나를 칭찬하더라도, 남은 23시간 50분 동안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나는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게 아닌게 됩니다. 나한테 도가 지나친 말을 하는 사람의 말에 항의하지 않고 애매하게 웃어 넘기거나, 피곤에 쩔어 있는 몸을 쉬게 해주는 대신 참고 견디거나, 주변인들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나의 욕구를 매번 억누른다면, 나의 자아는 내가 소중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없이 학습합니다. 가끔 돌아서 긍정적인 말을 하거나 맛난 음식을 사먹인다고 해서 하루종일 상처 입은 마음이 회복되지는 않아요.


나를 사랑하는 연습의 기본은 스스로 잘해주기 이전에, 나 자신에게 하지 말아야 할 짓부터 안 하는 건거 같아요. 저 또한 일상 속에서 주변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혹은 막연한 죄책감에서, 나의 욕구를 잠시 미뤄둔 채 무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닌 친한 친구라면 어떨지 생각해 봤습니다 (Neff, 2018). 친구가 어느 날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하는데, 집안 꼴이 이 모양인데 잠이 오냐고, 청소부터 하라고 다그치지는 않잖아요. 이미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누군가 작지만 무리한 부탁을 하면, 지친 친구한테 그냥 니가 좀 참고 해, 라고 말하지도 않죠. 지나가는 행인1에게도 하지 않을 말들을 나는 나 자신에게 하고 있는건 아닌지요. 그러때마다 나의 자아는 조용히 학습합니다. 나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구요.


볼비와 에인스워스의 애착이론에 따르면, 자기 욕구를 스스로 외면하려는 성향은 어린 시절 부모 (혹은 주양육자)와의 애착 형성 과정에서 학습한 패턴이라고 합니다 (Bowlby, 1990). 아이 입장에서 볼때 특정 행동이나 감정 표현에 따라 부모가 사랑을 줄 수도, 거둬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애착이 불안정하게 형성됩니다. 부모가 사랑을 거둬들이는 일은 잘못한 아이를 혼내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아이의 행동에 따라 옳고 그름을 확실히 하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의 감정보다는 자기 감정에 따라 일관성 없게 반응하거나, 외부 스트레스, 혹은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아이와의 연결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아이는 생존과 직결되는 부모와의 연결감을 회복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안간힘을 쓰게 되고, 자신의 욕구보다는 부모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이런 아이는 어른이 되고나서도 자기 욕구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주변의 욕구에는 지나치게 민감하기 쉽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쉽게 등한시하는 현상을 애착 이론에서는 자기 버림 (self-abandonment)이라고 합니다 (Priebe, 2022). 나를 제대로 사랑해주려면 순간순간 나에게 필요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짚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습관적으로 자기 버림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조차도 어렵습니다. 쉬어야 할 때 쉬는 것에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고,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정당하게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 화가 안 납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과는 무리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나 자신과의 신뢰는 이미 무너진지 오랩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려면 가장 먼저 자기 버림을 평소에 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차려야 합니다. 심리 상담하면서 가장 흔히 보는 자기 버림 패턴은 첫째 막연한 추측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겁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겠지'와 같은 모호한, 그리고 때로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죠. 둘째는 자기 버림을 합리화하는 버릇입니다. '그 친구는 평소에도 여행 계획 세우는 건 젬병이니까 내가 또 다 맡아서 하지 뭐'와 같이, 상대의 정당하지 못한 행동을 억지로 정당화 시키는 식이죠.


지난 일주일 동안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했던 일이 있었나요. 나의 욕구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머리는 우리를 속일지라도 몸은 절대 거짓말을 못합니다. 저는 자기 버림을 할 때면 윗배가 뭉친 듯이 땡기기도 하고, 어깨와 뒷목의 근육이 긴장합니다. 턱뼈에도 힘이 들어가구요. 몸에서 지금 이 상황은 괜찮지 않다고 마구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자기 버림을 오랜 시간 해온 내담자들은 신기하게도, 말로는 괜찮다고 우기지만, 하나 같이 몸에 지병이 있습니다.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린다거나, 심한 경우에는 루푸스나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자가 면역병을 앓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내가 나를 외면하는 사람은 결국 그만한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기본적인 욕구들이 있습니다. 몸이 안전하고 쾌적하기를 바라는 욕구, 누군가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욕구,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 등. 이런 욕구에 뿌리를 둔 일상 속 작은 느낌을 유치하다고 치부하지 않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연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일시적으로 잘해주는 대신,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알아주는 노력을 통해 자기 자신과의 신뢰를 도로 쌓아보고자 합니다.




연습 1. 별일은 아니지만, 그냥 하기 싫었던 일이 지난 일주일 동안 있었나요? 그 일을 되돌아보며, 그 하기 싫었던 기분 이면의 욕구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기.


연습 2. 최근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일이 있었나요? 그 당시 했던 걱정을 3가지만 나열해보세요. 그리고 지나고 보니 그 걱정이 얼마나 현실적이었는지 10점 만점에 몇점 정도인지 점수 매겨보기.


연습 3. 나를 칭찬해주는 대신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없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나 자신에게 질문하기.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진짜로, 진짜로 필요한 건 무엇일까?"라고요.



참고.

Bowlby, J. (1990). A secure base: Parent-child attachment and healthy human development. Basic Books.


Neff, K., & Germer, C. (2018). The mindful self-compassion workbook: A proven way to accept yourself, build inner strength, and thrive. Guildford Publications.


Priebe, H. (October 10, 2022). Self-abandonment: What it is and how to stop doing it [Vide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fcRRfH9k0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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