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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Sep 07. 2023

안정 애착은 자동차의 윤활유와 같다

나 자신을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불안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에게 인생이라는 긴 여정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거리는 어떻게든 남들과 똑같이 나아가지만, 한참을 달리다 보면 유독 나의 자동차만 후드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하고, 계기판에서는 알수 없는 불빛들이 번쩍거리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는 점점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이때 불안정 애착 유형의 운전자는 있는 힘을 다해 페달을 밟아 어거지로 나아가려 하지만, 결국 차는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다 보면, 어느덧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차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나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능력도 책임감도 있고, 나름의 매력도 있는 것 같고, 사회 생활도 그럴듯하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자동차가 힘을 잃고 멈추어 서는데,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습니다. 


차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엔진 오일이 다 떨어진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엔진이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가 적절히 제공되어야 하는데, 한 가지 필수 요소가 빠지고 나니, 엔진은 자꾸만 과열되고 부품은 점차 마모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면요.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를 고되게 하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에게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출발점 자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는 문제가 있어"이기 때문에, 나의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로부터 적절한 공감을 받지 못하면서 자라나면, 자신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이 지극히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이라고 스스로 설명해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고치는 데"에 평생을 바치게 됩니다. 나의 모든 자원을 남들에게서 나의 부족한 점을 숨기고 가리거나, 혹은 나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채찍질하여 막연한 누군가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다 소진하고 나면, 정작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내가 원하는 일에 쏟을 수 있는 힘은 얼마 남지 않게 됩니다. 


둘째는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어, 나에게 힘이 되는 관계보다는 나에게서 힘을 전부 뽑아내는 관계가 주변에 많습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줄 모른다고 하죠.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기쁨과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직감합니다.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아파도 내가 아픈 줄 모르고, 슬퍼도 내가 슬픈 줄 모르고, 화가 나도 내가 화난 줄을 모릅니다. 그저 막연하게 불편한 감정이 들때마다 그것을 급하게 틀어막기에 급급할 뿐이죠.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면, 요즘 기가 막힌 마케팅 전략들이 많아, 나 자신에게 돈을 써서 당장 불편한 감정을 가려보자는 식으로 유도하는 사회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2차 전략은 상처를 더욱 덧나게 할 뿐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우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는 경우를 각 유형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불안 애착 유형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니즈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아프고 화가 나고 힘들어도, 우선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 우선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 불안 애착 유형의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상대방을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듭니다. 그리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그 상황에서 사실 나는 화가 났었구나, 사실 그 사람이 나에게 함부로 대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반면, 회피 애착 유형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조금만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 난 아무도 필요 없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깎아내려 거리를 두며, 상황을 우선 피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듭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의지하는 상황을 점점 줄여나가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키워나가는 데에 온 힘을 집중합니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피하기 위해 실력을 키우는 것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해 실력을 키우는 것은 궁극에 가서는 그 만족도가 확연히 다릅니다. 커리어 면에서는 상당한 성공을 일구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혼자 있는 시간 동안에는 내면에서 아직 아프고 외로운 어린 아이가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나라는 자동차에 부족한 윤활유는 결국 건강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나 자신과의 관계, 둘째는 타인과의 관계입니다. 나와의 관계를 좋게 구축해나가기 위해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부모가 나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공감 능력,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감정을 탐정처럼 관찰하고 찾아내어, 이름을 붙여주고 원인을 알려주고 달래주는 역할을 이제는 내가 나 자신에게 해주어야 할 때가 온 겁니다. 그렇게 나는 근본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가르쳐주고 나면, 나는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능력이 점차 증가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술이나 달달한 음식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친구나 배우자를 붙들고 울어보는 것이구나.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순간의 화풀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무리한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구나.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함께 시간 보내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친구들과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혼자 집에서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구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업무를 무리하게 해내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그 한 가지 일을 해내어 진정한 만족감을 경험해보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스스로 점검하며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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