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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Jun 07. 2024

도파민 수용체가 튀김이 되도록

욕심이 많다는 건 내게 주어진 정당한 몫보다 더 많은 걸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목표를 크게 세우고 그만큼 노력을 들이는 건 꼭 욕심이라기보다 그냥 열심히 사는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노력은 안 하면서 많이 바라는 사람은 욕심쟁이가 맞는 것 같아요. 동화에서는 내 몫보다 더 많은 걸 탐내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죠. 그런데 나를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 자꾸 그러면 동화에서처럼 그만한 댓가를 치루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참 전, 저는 '해야 할 일들' 틈바구니에 끼어 나의 욕구는 언제나 뒷전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의 욕구를 챙기기는 커녕, 똑바로 알아차리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죠. 스트레스가 가슴 속에 응어리지고, 몸과 마음의 균형은 깨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럴려고 가장 먼저 생각해 낸 것이 지금, 당장, 나의 기분을 좋게 할 무언가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나쁜 기분으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혁신적인 생각의 결과였다고, 당시에는 뿌듯했었죠. 오늘 하루, 내 기분을 업시켜줄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묻는 것에서부터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손쉽게 다가오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적은 돈으로 순간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을 발굴해냈습니다. 달달한 디저트, 시원한 맥주, 조그만 소품, 옷, 신발, 가방과 같은 소비가 가장 쉬웠습니다. 가끔 나의 취향을 반영한 근거리 여행을 끊어서 혼자, 혹은 함께 떠나기도 했구요. 하다 보니, 돈을 써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다른 노력 없이 순간의 기분 전환에는 가장 효과적이더군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는 점점 떨어지는 듯 했고, 무엇보다 몸과 통장에 무리가 가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이 전략의 한계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나를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나를 위한 작은 기쁨을 돈으로 사서 누려본 적이 있나요. 삶이 밋밋하고도 막막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스트레스 한번 풀어볼 목적으로 소비가 습관으로 장착해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 세상에 돈으로 할 수 없는게 없죠: 쇼핑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술이나 담배도 하고, 달달하고 짭짤하고 매콤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구요. 이렇게 돈을 써서 하는 일은 전부 일시적으로 도파민 체계를 자극하여 순간적으로 기분을 전환시켜줍니다. 동기 부여를 목적으로 진화된 도파민 체계는 원래 귀찮지만 생존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들, 먹잇감을 사냥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하도록 마음 속에 결핍을 생성하면서부터 시작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도파민은 기분을 좋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우선 결핍을 만들어내고 그 결핍을 해소함으로써 쾌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죠.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도파민 체계를 활성화시키는 자극들은 생존에 필수인 것 이외에도 너무나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술이나 커피, 단 음식은 모두 인류가 진화해온 약 25만년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초정상 자극 (Supernormal stimuli)에 해당합니다. 우리 뇌가 10점 만점에 10까지의 자극에 반응하도록 진화했다면, 오늘날 기분을 좋게 해주는 자극들은 대부분 12-13점, 혹은 그 이상의 자극을 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렇게 과한 자극에 우리 뇌는 또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합니다.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이 줄거나, 이미 분비된 도파민이 재흡수되는 비율이 늘거나, 도파민을 인식하는 수용체 중 가장 무딘 아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거나. 이렇게 초정상 자극에 자주 노출되는 뇌는 아주 빠른 속도로 자극에 무뎌지도록 스스로 조절을 합니다 (Ferris et al., 2013). 이 과정을 다른 말로 중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기분을 좋게 하려다가 기분 좋음을 느끼는 능력을 점차 상실해가는 과정인거죠.


몸과 마음에 나쁜 것들은 전부 알고 보면,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당장 좋은 기분을 누려보려는, 욕심쟁이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 욕심쟁이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은 아니었겠죠. 힘들고 지치다 보니, 세상살이에 치이다 보니 그런 작은 기쁨이라도 느껴보려는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런데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식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분은 순간 좋아질지는 몰라도, 결국 튀김이 되어버린 나의 불쌍한 도파민 회로는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행복과 즐거움만을 좇는 사람일수록, 행복도가 떨어진다는 말이 직관적으로도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세상에 기여할 나만의 역할을 찾아내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그 부산물로 성취감, 평온함, 함께 애쓰는 사람들과의 연결감 등으로 보상을 받는게 아닐까요. 나의 애꿎은 도파민 수용체들을 애지중지 아끼는 마음으로, 지금 당장의 기분 좋음보다 훨씬 값진 충만함을 타깃으로 삼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 전부가 쿠팡 로켓 배송으로 문앞에 나타나는 마약 같은 마법은 어쩌면 우리에게서 그것들을 얻기 위해 수고할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가치 있는 것들은 여전히 공짜가 아니거든요. 건강한 몸, 돈독한 인간 관계, 의미 있는 일은 전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마음대로 안 될 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수 존슨 박사는 감정 조절의 2차 전략이라고 명명했습니다 (Johnson, 2019). 샤넬 브랜드의 창시자인 코코 샤넬 여사 또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전부 공짜다. 그리고 두번째로 좋은 것들은 아주, 아주 비싸다"고요. 누군가에게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들을 받지 못한 그녀는 두번째로 좋은 것들을 고안해내는데 평생을 바쳤으니, 이게 성공인지 비극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나에게 좋은 부모라면, 저는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히 계획하고 노력할 기회를 저에게 줄 것 같습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떡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떡보다도 좋은, 진정어린 관심, 나 자신에 대한 알찬 기대, 그리고 하루하루 노력하는 나를 기다려주는 따뜻한 마음. 오늘 하루는 시간과 노력과 자원을 필요로 하는 내 삶의 다양한 영역에 감사하며,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임하려 합니다.



연습 1. 먼 훗날, 나의 장례식날입니다. 장례식장을 찾은 나의 지인들은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상상해보기. 그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기를 바라나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요?


연습 2.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들을 쭉 적어보기. 그리고 이중에서 나에게 평온함과 충만함을 느끼게 해주는 '최고로 좋은 것'들, 그리고 불행을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두번째로 좋은 것'들을 구분해보기. 나는 어떤 기준으로 이 둘을 나누나요?


연습 3. 중독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다면, 기간을 정해, 예를 들어 딱 3일, 혹은 일주일간 그것을 끊어보기. 어떤 감정들이 올라오나요?


참고.

Ferris, M. J., Calipari, E. S., Yorgason, J. T., & Jones, S. R. (2013). Examining the complex regulation and drug-induced plasticity of dopamine release and uptake using voltammetry in brain slices. ACS Chemical Neuroscience, 4, 693-703.


Johnson, S. M. (2019). Attachment theory in practice: Emotionally Focused Therapy (EFT) with individuals, couples, and families. Guildfor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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