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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KEUFeeLMYLOVE Sep 20. 2023

힘을 빼는 게 힘

땀을 뚝뚝 흘리며 운동했는데 왜 그대로죠?

그룹 필라테스만의 매력이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운동을 하다 보면 '전우애'가 싹튼다. 어느새 속으로 옆 사람을 응원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면서 반갑다. 필라테스를 갓 시작했을 때는 내 몸하나 건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밖에 보이지 않았고 응원이야말로 사치였다.



유독 도전적인 동작이 많았던 그룹 수업날이었다. 3:1 수업에 1명이 빠지고 나를 포함해 단 2명이서 진행했다. 나와 같이 수업에 임한 그녀는 약 3달 전부터 꾸준히 나와서 낯이 익다. 신기하게도 3개월 만에 큰 변화가 보인다. 내가 본 첫날과 지금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누가 봐도 살이 확 빠진 게 느껴지고, 동작 수행률도 거의 100%에 가깝게 되었다. 처음에는 50% 정도 셨던 것 같다. 더욱 신기한 변화는 얼굴 표정이 환해지셨다. 필라테스라는 운동은 얼굴 표정도 부드럽게 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그녀와 나는 마치 아는 사이인 것처럼 듀엣 레슨에 들어갔다. 강사님의 티칭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집중한 수업이었다. 포커페이스의 달인이 된 덕분일까 나의 힘듦을 간파하지 못한 강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번에는 이렇게해볼까요?" 더 어려운 동작을 하겠다는 뜻이다.


서 있는 자세에서, 한 발은 박스 위에 런지자세를 만들고, 나머지 발은 풋바위에 간신히 올린다. 그 상태로 뒤에 있던 발로 스프링의 장력을 느끼며 캐리지를 움직인다. 리포머 수업일뿐인데, 아슬아슬한 밧줄 위를 올라가서 묘기를 부리는 공중 곡예사가 된 기분이다. 서커스를 끝내고 이제 좀 내려와서 쉬나 했더니 또다시 이어지는 동작, 그나마 이제는 지면과 가까운 네발 기기 자세다. 그냥 네발 기기 자세면 재미없으니깐 토닝볼도 야무지게 쥐어준다. 거기에 흔들흔들 균형감각까지 섭섭지 않도록 토닝볼 쥔 팔은 앞으로 발사할 듯 길게 뻗어주고 반대 다리도 길게 뻗어준다. 뻗어준 팔과 다리는 줄다리기하듯이 세상에서 가장 멀리 멀어진다!


균형 잡기의 달인 :)


이미 나의 근육은 탈탈 털린 중후반이다. 1kg도 안 되는 토닝볼이지만 10kg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겨우 한쪽을 끝내고 이제 반대쪽을 진행하려는 찰나, 강사님의 지시가 하나님의 목소리처럼 내려온다.


"이제 부하가 충분히 걸려있으니, 승모근에 너무 힘이 들어감을 느끼셨다면, 토닝볼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진행해도 좋습니다."


예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냉큼 토닝볼을 멀찍이 내려둔다. 미련 없이 내려놓은 것은 나와 같이 수업을 들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체감상 10kg 같은 묵직한 토닝볼을 내려놓았다. 날아갈 듯 가벼운 빈손이다. 자연스레 나의 호흡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자세도 더 신경 쓰게 된다. 무거운 토닝볼을 내려놓자 타켓 머슬들이 잘 인지되었고, 동작을 더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뭔가 어색하면서도 깊은 민족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아~ 내가 조금은 성장했구나 하고 깨달았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토닝볼을 내려놓으면 지는 줄 알았다. 이기고 지는 게 없는데 말이다.


안돼 끝까지 들고 할 거야. 나는 약하지 않으아! 못 내려놔아아아아!!


좀 과하게 과장한 나의 속마음 목소리다. 예전이었으면 내가 토닝볼을 내려놓았을까? 아등바등. 마치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지구를 들듯이 힘겹게 들어 올려서, 자세는 다 무너졌을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운동이란 말인가.


힘을 주는 건 누구나 연습하면 할 수 있다. 힘을 줄 수 있을 때 주고, 뺄 수 있을 때는 빼는 게 진정한 힘이지 않을까?



힘을 빼는 것도 힘이라는 것 몸소 깨닫게 되면서, 내가 선호하는 운동의 강도도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필라테스를 접한 초반의 나는 악쓰듯이 운동을 했다. 운동은 원래 이렇게 힘든 게 당연한 거라며 나약한 나를 더 채찍질했다. 할 수 있다를 되뇌며 항상 나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 이후 여러 필라테스 강사님을 접하며 참 다양한 수업을 받았다. 직접 해보고 여러 책을 거치면서 연구한 바, 나에게 딱 잘 맞는 강도는 중강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 어쩌면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적당히" 다. 


나의 경우 중강도로 운동을 하면 나의 운동능력치의 60% 정도만 발휘하면 된다. 필라테스 호흡을 온전히 다 챙겨가며 완벽히 수행한다. 하지만 만약 그날 수업이 고강도라면 나의 운동능력치의 120% 많게는 200%까지 끌어와서 중간중간 호흡은 놓쳐가며 겨우겨우 수행은 한다. 수업을 다 끝내고 나면 중강도였을 때는 눈이 저절로 무겁게 꿈뻑꿈뻑 감기고 근육이 편안하게 이완된다. 하지만 고강도 수업이었을 때는 근육이 과긴장상태가 되어 오전에 운동을 했는데도 저녁에 잠이 잘 오지 않고 피곤해서 다른 활동에 지장을 받게 된다.


똑같은 수업일지라도 개인마다 느끼는 강도는 다르므로, 내가 느끼는 게 정답이다. 너무 힘들면 힘을 뺀다.


운동할 때 우리의 근육은 탄수화물과 지방에서 에너지를 빼내서 사용한다. 중간정도의 강도로, 자기 힘의 60% 정도 운동하면, 탄수화물과 지방에서 각각 절반 정도의 에너지를 뽑아내 사용한다. 그러나 만일 강도를 높여서 90%로 올리면 에너지의 거의 대부분을 탄수화물에서 꺼내 사용하게 된다. 고강도의 운동으로 인해서 '급한 사태'가 왔다고 감지한 몸은, 탄수화물을 먼저 내주고 만약을 대비해 저장해 둔 지방은 최후까지 지켜내기 때문이다. 결국 강도가 높아질수록 지방이 덜 소비된다는 뜻이다. 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세포기능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퇴화한다. 지나친 운동으로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지방을 태우고 더 효과적으로 운동하고 싶다면, 중간정도 힘이 들고 지속가능한 운동이어야 한다. 항상 고강도의 운동은 지속하기도 힘들다. 왜냐면, 우리 인간은 애초에 힘든 운동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의 한 종(種)이다. 야생의 얼룩말은 고강도의 400m 인터벌 트레이닝 훈련을 하며 기록을 재지 않는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은 700만 년 동안 400m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며 헐레벌떡 숨을 헐떡이며 살지 않았다.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다.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나는 동물이 아니듯이 인간은 뛰는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걷는 동물이다.


우리는 운동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지는 않지만, 현대에는 과거보다 육체적인 활동이 현저히 줄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적당한 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중간 강도의 운동이면 더욱 좋겠다. 힘은 빼고 휴식도 운동이다라는 여유로운 마음을 더해보자. 오늘도 종이 한 장의 힘을 차곡차곡 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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