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우리를 부를 때(1)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돈, 사랑, 명예, 권력. 누구나 쫓아다니는 그런 것은 우울증 환자에게 관심 외 일 수도 있다. 라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돈도,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일반인들처럼 우울증 환자 가까이 있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우울증 환자는 누군가의 죽음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다. 최근 주변에 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죽음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암 환자들이 있고, 불치병 환자들이 주변에 있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울증 환자들의 주특기다.
그리고 그 죽음에 자신을 대비시켜 자신을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넣는 것 그것 역시 우울증 환자의 주특기다. 자살한 사람들의 기사 밑에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는 문구가 많이 보인다. 요즘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 문구들은 더 자주 볼 것이다. 특히 연예인의 자살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들의 슬픔을 함께 승화시키지 못하고 체화하니까 말이다. 공인의 죽음에 함께 동화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울증 환자가 겪는 여러 가지 고통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일까? 우울증 환자는 자살 시도도 많이 한다. 그 자살이 성공하는 것이 행복일까? 아니면 실패하는 것이 행복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세 번의 자살 시도에서 세 번 다 실패했다. 죽기 전에 무서운 그런 것 따위는 별로 없었다. 죽은 후의 무서움... 죽은 후는 어떻게 알겠는가? 무서운지 아니면 안 무서운지 그건 도무지 알 길이 없어 아무것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우울증 환자는 언제나 죽음을 옆에 끼고 산다는 사실이다. 아!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이 말을 옆에 끼고 산다. 하지만 쉽게 죽지는 않는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는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다만, 다른 사람보다 죽음을 더 가까이 체화하고, 죽음에 동화되어 산다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항상 머릿속에는 자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들이여 절대 실천으로 옮기지 말자. 자살 시도를 한 사람으로서 자살 실패 후 다가오는 그 허무함은 더 깊은 우울의 나락으로 나를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살과 같은 시도는 애초에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내가 아는 암 환자 중에 암과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도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면서 씩씩하게 암과 함께 살기를 선언했다. 그래서 암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그 암에게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잘 지냈니? 오늘은 잘 있어서 줘서 고마워. 이렇게 안부를 묻는다. 나도 할 수 있다면 내 우울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안부를 물어보고 싶다. 오늘은 어땠니? 오늘은 기분이 괜찮았니? 그렇게 말이다. 아니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 우울에게 안부를 물어야지만 동화된 죽음으로부터, 체화된 죽음의 연습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살아남자! 그리고 살아가자! 우울과 친구가 되어 살아보자! 가까이 있는 죽음도 친구가 되어 보자. 우울과 죽음, 뗄레야 뗄 수 없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 이 삼각 관계를 유지하며 삼각 관계의 긴장을 진행형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힘을 내보자. 우울과 죽음이 가까워 지면 내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내가 우울과 가까워지면 죽음을 불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내가 죽음과 가까워지면 우울을 불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
오늘 당장 해야할 일은 내 우울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을 해야겠다. 그리고 내 죽음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을 해야겠다.
무슨 이름으로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흔한 이름이라도 좋다. 벗어날 수 없는 것들이라면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울아, 죽음아. 함께 살자. 너희들이 없으면 내가 없는 것처럼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