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과 함께
새벽이 오기도 전에 눈을 뜨는 일이 잦아졌다. 몸이 먼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주방 어딘가에 나뒹구는 안쪽에 누런 커피 때가 낀 Black 머그컵 하나가 떠오른다. “아, 오늘도 깼구나.” 말없이 시작되는 하루.
손주들이 와서 와서 웃고 떠들고, 그 소리에 가슴 한켠이 살아난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언제 가려나.... ㅋㅋㅋ ^^ 이게 뭔 마음일까. 반갑고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겁나는 마음. 체력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버릴 때가 많다.
아들과의 대화는 와이프 눈치를 보며 내용을 먼저 머릿속에 다듬어야 하니 여전히 멀게 느껴져 이제는 말을 아껴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그냥 침묵을 입는다. 아프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때론 더 외롭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말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와이프와는 오랜 세월 가까이 가기 어려운 거리감을 오늘도 깨닫는다. 수많은 다름과 반복된 대화 끝에, 말 줄이고 마음도 접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몇몇 것들은 그저 유튜브로 듣는 옛 노래, 드라마 다시 보기로 시간을 때운다. 말소리는 점점 더 줄어만 간다. 나를 위로해 주던 뒷마당 가꾸기도 와이프 잔소리에 밀려 내어 준지 오래다.
얼마 전엔 꿈을 꿨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방. 뜨겁게 끓던 바닥, 물이 차오르고 번져가던 불길.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방엔 분명히 당신의 기운이 머물러 있었다. 아궁이의 불처럼 그리움이 일렁이고, 물처럼 터져 나온 죄책감이 이불을 적셨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더 뚜렷했던 그 방은, 그리움과 회한이 엉켜 있는 시간의 조각 같았다.
장남으로서의 의무, 캐나다라는 이국의 땅에서 지키려는 제사, 명절에 차례도 지내지 못하는 현실. 모든 것이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한국에서의 전통을 안고 건너온 나는 지금, 타인의 이해도, 가족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혼자만의 예를 올린다. 그 모습조차 누군가는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조용히 촛불을 밝힌다.
나는 지금 그 어디쯤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소리 없는 기도를 드리듯 하루를 살아간다. 누구도 잘 알아채지 못할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에서만 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이 나를 지탱해 준다.
그래도 아직 내 안엔 불씨 하나쯤은 남아 있지 않을까? 아주 작고, 희미하고, 손에 잡히진 않지만… 분명 꺼지지 않은 불씨 하나. 언젠가 그 불씨가 또 다른 온기가 되어줄 날을 나는 오늘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