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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여명 Sep 12. 2023

아이와의 유럽 여행을 준비한다는 것에 대하여

본 조르노, 아이와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여행 가방을 쌀 때 5대 5 혹은 6:4의 비율로 부피를 나누어 써왔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내 물건이 차지하는 비율이 7에 가까울 때도 있긴 하지만 그동안은 나름 공평(?)했단 소리다. 그러던 우리의 여행 시나리오에 두둥! 아이가 등장한다. 여기도 아기 거, 저기도 아기 거, 여기저기 다 아기 거, 인 처지가 되어 후미진 구석 어딘가에 우리의 필수품을 욱여넣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타격을 입는 쪽은 아무래도 남편이 아니라 나다. 어차피 남편은 최소한의 물건만 챙기는 스타일이고 그래도 나는 SNS에 올릴 만한 사진 몇 장 찍어보겠다고 자리가 남으면 이 옷, 저 옷 챙기는 편이었으니 말이다. 가방이라는 공간은 유한하고, 그 유한한 공간에서 빠져야 하는 것은 내 물건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 찍지 말고 연우만 찍어”를 비교적 자주 언급하게 된 것도 바로 가방의 공간이 가진 이 유한함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계속 똑같은 옷을 입고 아이의 옆이나 뒤 어딘가에서 등장하느니 차라리 빠져서 아이의 사진을 온전하게 완성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 서글프기도 한데 – 아이가 태어나기 전 여행 사진의 8할은 내가 주인공이었는데! - 아무튼 아이는 어떻게 찍어도 예쁘니, 아이 사진을 예쁘게 찍겠다는 소리다.   

   

아니, 그래서 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고 가정했을 때 얼마만큼의 짐이 따라오느냐를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묻는다면, ‘사실상 아이 짐이 전부’라는 답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외로 여행을 가는 경우라면 더욱이 그렇다. 아이의 먹을거리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여행 기간을 정확하게 곱한 생수, 작은 공기 햇반, (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플라스틱 트레이 없는 김, 동결 건조 국(고기가 반입되지 않는 미국령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라면 북엇국, 황태미역국, 미소된장국 등을 챙겨야 한다.) 팩 우유 및 주스와 아이가 좋아하는 간단한 간식거리(연우와의 여행에서 일등 공신은 언제나 고구마말랭이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거나, 밥을 잘 안 먹을 때, 이동 중에도 가장 손쉽게 먹일 수 있는 간식인데, 특히 ‘해남에서 만든...’ 으로 시작하는 고구마말랭이는 시중에 판매하는 것 중에 가장 부드러워서 아이 먹이기에 좋다. 내돈내산!)까지, 간단한 것만 챙겨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아이가 분유를 뗄 때 한 번, 이유식을 뗄 때 한 번, 기저귀를 뗄 때 한 번, 총 세 번에 걸쳐 여행의 신세계는 열린다. 챙겨야 할 짐의  부피가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이와 여행 팁 1.    

병원을 가기 쉽지 않은 해외여행의 경우, 자주 가는 소아과에 방문해 비상약을 처방받아 올 것을 추천한다. 단, 처방받아 온 약은 오래 두고 먹일 순 없다. 먹지 않은 약을 버리는 것이 아깝다면, 약국에서 구입하면 된다.     


아무튼, 늘 그렇듯 새벽까지 짐을 챙긴 나는 제법 길게 내려온 다크서클과 함께 이번 여행을 시작했다. 거의 한 달에 걸쳐 가져갈까 말까를 고민한 유모차는 마지막에 차에 실렸는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로마 편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공항은 언제나 설렌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신랑은 여행을 가지 않아도 여행의 설렘을 느끼러 공항까지 와서 밥을 먹고 간 적이 있다고 하는데, 아이가 없던 시절에 이틀만 비어도 2박 3일짜리 해외여행을 떠나기 바빴던 우리에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의 점차적인 회복이 더없이 반가웠다.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메시지는 꽤나 분명하고, 간결한 것 같다. 모든 일정과 계획을 정확히 알 리 없는 만 3세 아이도 무척 설레는지 제법 이른 시간인데도 신이 났다. 그런데 가만있어 보자……. 아까부터 코를 훌쩍거리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어제 소아과에서 처방받아 온 비상약에 뭐가 있더라?’를 생각하며 수속을 밟는다.    

  

아이와 여행 팁 2.

유모차를 가지고 해외여행을 간다면,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를 반드시 사용하라. 항공사마다 규정이 달라서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이 서비스를 사용하면 게이트까지 유모차를 가지고 들어가 비행기 탑승 직전에 문 앞에서 승무원에게 유모차를 맡길 수 있다. 연우의 유모차는 접이식이었지만, 경험해 보니 접어서 비행기 내부의 좁은 복도를 지나 머리 위 선반에 올리는 일이 상당히 불편하고 번거로웠다. 도착지에서 내리면 대부분 유모차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짐을 찾는 곳까지 아이를 태우고 갈 수 있다. 또 한 가지! 유아 동반 여행의 경우 공항에서 패스트트랙을 이용해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유모차 덕분인지 인천 공항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공항에서도 보안 검색과 출입국 심사 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놈의 PP카드! 사실, 신혼 때 발급받아서 해외여행을 다닐 때 가장 유용하게 사용했던 카드인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시 방문한 괌과 이번 이탈리아 여행 그리고 얼마 후 혼자 다녀온 독일 출장에서도 이 녀석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일이 발생했다. 신랑의 근무 일정 탓에 2박 3일 해외여행을 가능케 해야 했던(!) 우리 부부는 정말 빼곡한 일정으로 여행을 하곤 했는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라운지에서 샤워를 하고, 배를 불린 다음, 밤 비행기를 타는 그 개운함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라운지를 이용할 수 없었던 우리는 배고프다는 아이를 데리고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우동 한 그릇을 비운 다음,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는 하필(!) 봉제인형을 좋아한다. 길고 진지한 논의 끝에 여행을 함께 하게 된 두 친구들(왼). 여행의 설렘을 아는걸까. 오래 줄을 서 있는데도 아이는 칭얼거리지 않았다(오)
공항에는 아이들이 시간을 보낼 만한 공간이 생각보다 많다. 그 중에서도 인천공항은 단연코 최고! 뽀로로 만세! 인천공항 만세!
신랑이 메고 들고 있는 모든 가방 안에는 여권 빼고 사실상 모두 아이의 물건이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도어 투 도어를 이용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직전에 유모차를 맡긴다.



자, 신랑, 긴장해. 지금부터 12시간이야.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린 나는 하나, 둘 아이의 물건들을 꺼낸다. 12시간을 버티도록 도와줄 비장의 무기들이다. 지금까지 연우가 경험한 가장 긴 비행시간은 약 4시간. 후들후들. 나 지금 떨고 있냐. 비행기는 이륙했고, 출구 없는 우리의 12시간 비행기 육아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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