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조르노, 아이와 함께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아이가 운다. 집에 가고 싶다고, 페퍼 언니가 - 우리 집 반려견 이름이다. - 보고 싶다고 서럽게 운다. 저녁 산책 내내 오늘은 호텔 말고 집으로 갈 거라는 말을 반복해 대기에 내심 불안하긴 했었는데, 호텔 근처에 이르자 와앙, 졸음 섞인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앞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피렌체의 좁은 골목들을, 그것도 돌길 위로 무거운 여행 가방과 유아차를 끌며 숙소 앞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압도되어, 나라는 존재가 하염없이 미천하게 느껴지던 순간. 어느 공간에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빨려 들어가듯, 어떤 수식어도 붙일 수 없었던 순간. 더욱이 피렌체에 머무는 일정과 동선을 고려해 피렌체 역사 지구 중심가로 예약해 두었던 숙소는 또 어땠는지. 창문을 열면 보이는 것이 하늘이 아니라 어느 오래된 연극의 무대를 보듯, 두오모의 한쪽 벽면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우는 아이를 안고 숙소에 들어간 우리는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피렌체의 밤을 맞이했다. 창문 틈새로 밤늦도록 두오모 광장을 떠나지 않는 관광객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스며드는 밤이었다.
문득 아이가 더 어렸을 때, 지금보다 더 걸음이 서툴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엄마 손을 꼭 잡고 걷던 아이가 순간 넘어진다. “에고,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응, 괜찮아!” 넘어질 수 있어, 괜찮아, 안 다쳤으면 됐지! 아이의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며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 아이도 이내 괜찮아지고, 우리는 웃고, 다시 길을 걷는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안다. 아이가 넘어진 건, 아이의 걸음이 서툴러서일 수도 있지만, 아니, 사실은 내 걸음이 너무 빨라서였을 수도 있다는 걸. 작고 예쁜 너는, ‘엄마 너무 빨라요’라고 미처 말하지 못하고, 자그마한 발로 종종 대다 넘어진 걸 수도 있다는 걸. 아이의 무릎에, 손등에, 종아리에 난 크고 작은 생채기들을 볼 때마다 내 탓인 것만 같은 것도 그래서였지. 네 속도가 아니라, 엄마의 속도로 걸었던 수많은 날들 때문에.
울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던 아이는 눈에 눈물이 맺힌 채로 지쳐 잠이 들었고 나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매만졌다. 오늘 너와 어떤 길을 걸었을까, 네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얼마큼의 속도를 내었을까. 엄마가 너무 빨라서 미안. 엄마 눈에 멋지다고, 네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미안. 성인 2명이 겨우 탈 수 있는, 어두컴컴한 피렌체 숙소의 비좁고 삐걱거리는 엘리베이터도, 네게는 더 커 보였을 두오모도, 네가 늘 ‘영어 사람’이라고 부르는 낯선 외국인들도, 엄마에게는, 또 아빠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너에게는 두려움이었을 수 있다는 걸 놓쳐서 미안. 여행을 시작하기 전, 우리가 세운 여행 계획을 더 자세히 설명해주지 못해서 미안. 그래서, 네 마음이 이곳에서 잠시 넘어지게 한 것 같아 미안. 가만히,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아주 고요한 밤이었다. 남은 세 사람도, 누가 먼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순서로 이내 잠이 들었다. 고요한 밤 끝에는 늘 그렇듯, 눈부신 아침이 있다. 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은, 차분한 피렌체의 아침, 눈을 뜬 아이는 밤사이 마음이 아문 듯, 제일 좋아하는 피규어들을 가지고 이불속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피렌체를 떠나기 전, 가족사진을 남기기로 한 날.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일찍 문을 연 가게에서 요깃거리를 사 두오모 광장 벤치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다시 웃어주어 고마워. 햇살 아래 우리의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해외여행 와서 한식 먹는 거 엄마, 아빠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네가 김밥이 먹고 싶다니까 피렌체 한식당도 한 번 검색해 볼게! 자, 이제 갈까? 오늘은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