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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클로이 Jan 21. 2023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본격 프랑스 살이의 시작은 역시나 행정처리부터.

    아직도 기억나는 막막함과 두려움.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한 채 "괜찮을 거야! 아무 문제없을 거야. 어차피 3개월일 뿐인걸."이라고 큰소리를 치며 집을 떠나올 땐 정말 그럴 줄로만 알았다. 모든 게 다 간단할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모든 행정문제를 이제부터는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용기였을까? 라며 자책도 잠시 해보았었다. 그러나 이미 엎어진 물,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해내야지.


    교환학생 당시 나는 Savoie 대학교 내에 있던 어학원에 다녔다. 프랑스인과 대화해 본 적도 없었고, 프랑스어 수준은 완전 기초인 상태에서 프랑스에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수업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였고, 질문에는 항상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었다. 오죽하면 처음 배운 단어가 'Je ne sais pas' (잘 몰라요.) 였을까. 사실 좌절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왜 그때 대답하지 못했을까' 라며 이따금 자책도 하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전공책을 여러 번 보고 또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입은 트이지 않은 '벙어리'상태였다. 난 당시 회화 실력은 엄청 떨어졌기 때문에 시험을 칠 때에는 작문이나 문법 시험에 모든 걸 걸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가끔 시험 결과를 보고 놀래셨다. 한 선생님께서 "넌 말 한마디도 못 하길래 프랑스어를 아예 못하는 줄 알았어. 그래도 작문은 잘하는구나? 조금 더 배우면 잘하겠는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나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었고, 결론적으로 파리에 가서 불어를 더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왜냐면 나는 불어를 정말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2-2013 학기에 내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증이다.


    학업 외에도 나는 신경 써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매우 답답하기로 유명한 프랑스 '행정처리'이다. 그때 당시에 했어야만 하는 것들 중에 가장 골치 아팠던 것들은 1. 은행 계좌를 여는 것, 그리고 2. Ofii(L’Office français de l’immigration et de l’intégration)에 3개월 내에 서류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Ofii는 간단히 말해 외국인들의 프랑스 이민과 정착에 관한 업무들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도착하자마자 3개월 내에 편지를 ofii 관할 사무소에 보내라고 한다면 시간이 아직은 넉넉히 남은 것 같지만, 이때 당시의 프랑스 행정은 그렇지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우편으로 보낸다 한들 3개월이란 정말 아슬아슬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도중에 분실되는 경우도 있고, 3개월 내에 모든 절차를 완료한 후(신체검사까지) 오피 비네트(ofii vignette)라는 스티커를 여권에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 스티커를 받으면 프랑스에 정식으로 체류를 허가받는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문제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왜냐하면 3개월이 다되어가도록 아직 편지 한 통도 받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0년 전의 프랑스의 행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물론 지금도 문제 투성이지만 옛날 보단 빨라졌지 라며 나를 다독이는 경지에 올랐다.) 편지 늦게 보내도 내 책임, 분실돼도 내 책임, 거기에 손 놓고 있어도 내 책임.. 결국 난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편지가 혹시 분실된 걸까? 다시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와 동시에 한국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한국이라면 이런 문제없었을 텐데. 한국이라면 이런 편지쯤이야 걱정하지 않고 얼마든지 그리고 문제없이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어학원의 디렉터에게 사정을 설명드리며 부탁을 드렸었다. "편지를 보낸 지 약 2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ofii로부터 아무런 소식을 받지 못했어요. 사실 나는 불어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프랑스에 체류증을 신청해서 체류를 연장하고 싶은데, 그게 지금 불가능해졌어요. ofii 때문에요. 혹시 도와줄 수 있으신가요?"라고 아직도 기억날 정도로 구구절절하게 말이다. 나는 스스로를 정말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왔었지만, 이때만큼은 아니었다. 역시 사람은 스스로가 무언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 해내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아직 소통할 정도의 불어는 아니었지만 불어 사전을 대동해서 그리고 영어도 섞어서 말이다. 근데 의외로 교장선생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바로 그 자리에서 ofii에 전화를 걸어서 나의 상황 설명을 해주셨다. 그런데 ofii 상담원이 다 듣더니 하는 말: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연락해." 정말 프랑스 행정답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디렉터가 본인이 전화해 보고 혹여 소식이 있으면 나에게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디렉터가 나를 불렀다. "네 오피  rendez-vous(헝데부 : 방문예약)가 잡혔어! 이 날 서류와 예약 증명서를 들고 방문해야 해. 아 그리고 이건 내가 쓴 편지야." 라면서 팩스로 받은 방문 예약증명서와 함께 본인이 직접 나의 사정을 쓴 편지도 주었다. 대략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3개월 이후에 방문하게 되었다는 편지였다. 결국 그녀 덕분에 나는 Chambéry에서 조금 떨어진 Grenoble이라는 곳에서 오피 비네트를 무사히 받게 된다. 


    이때 간단한 건강검진도 같이 했다. 키, 몸무게, 어디 아픈 곳 있는지 등등의 면담을 했다. 그러고 나서 흉부 엑스레이를 찍게 되었는데 "저기 가서 상의만 탈의하고 나오면 돼."라는 말을 듣고 탈의실에 들어가서 상의 탈의를 해보니 입고 나갈 가운이 없는 것이다. 너무 당황해서 "이대로 그냥 아무것도 없이... 그냥 맨몸으로 나가?"라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빨리 나오라는 말뿐. 너무 당황했지만 살며시 양손으로 가슴을 대충 가리고, 하얀 형광등 빛으로 가득 찬, 너무나 밝은 룸 안에 있던 흉부 엑스레이 기계까지 약 스무 발자국 걸어가서 찍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직까지도 프랑스에서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을 뽑으라면 10번째 손가락 내에는 드는 사건이다. 

    어찌 되었건 3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에 장기 체류증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이제 프랑스에서 더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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