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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씨 May 15. 2023

우리 이 여름을 만끽하자

자두 한입 베어 물며

 여름만큼 자신을 뽐내는 계절은 없으니까. 그만큼 나의 모든 것을 들춰내는 계절 또한 없으니까. 사계절이 존재하는 것에 감사할 뿐이야.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슬퍼해도 되는 계절.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어. 어찌 보면 그동안 날 너무 숨겨왔던 건 아닌지, 어깨까지 조금씩 짧아지는 소매와 맨 살에 닿는 살랑대는 바람.


 난 그냥, 얇아지는 계절이 함부로 나의 마음까지 드러낼까 봐 무서웠던 건 아니었을까.

 오늘은 오랜만에 하천 근처를 유유히 걸어봤어. 걷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시간을 내야만 산책을 하는 하루라니 스스로가 참 안쓰럽더라! 날파리가 휘몰아치는 광경을 보면, 하루만 산다던 하루살이가 온전히 하루를 만끽하려 이곳저곳 쏘다니는 걸 보면. 저들의 하루와 견줄 나의 평생의 삶은 어떤 원형을 그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돼.


 가끔은 저들의 삶처럼 온 힘을 다해 쏘다니겠다고 다짐했어. 그리고 가끔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리를 지키는 나무가 되겠다고도 다짐했지. 초록잎이 세상을 지배하는 계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니? 가만히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내 눈이 편안해짐을 느껴. 동시에 내 마음도, 정신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음을 느끼지. 그 향기는 얼마나 코끝을 간지럽히는지-.




 아빠는 자주 과일을 손에 쥐고 퇴근하셨어. 까마득한 어릴 때부터였으니까. 벌써 20년도 넘은 세월이지. 중간중간 그 여정엔 통닭도 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과자꾸러미와 아이스크림도 있었어.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한 건 과일이었지 아마. 저마다 선명한 색을 뽐내며 자랑하고 있는 탐스러운 과일들.

 난 계절이 바뀌는 시기를 날씨나 옷차림이 아닌 아빠의 손에 쥐어져 있는 과일로 체감했었어. 어느 날은 참외가 그 신호탄이 되기도 했고 또 다른 날은 복숭아, 자두를 보며 벌써 여름이 왔어? 하며 혼자 감탄하기도 했지. 분기를 넘겨 딸기 바구니를 들고 오시는 아빠를 보면서 양팔 벌려 그를 안고 딸기 향을 온전히 만끽하기도 했어. 곧 눈이 오겠구나,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머지않았구나. 이렇게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어.


 여름을 좋아하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어. 이 계절을 마냥 덥고 습한 계절로만 여겼는데. 호기심에 눈을 뜬 어린아이처럼, 여름의 매력에 푹 빠진 거 있지. 왜일까. 난 운명처럼 다가오는 사랑을 믿지 않아. 단순히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 운명이란 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픈 거라고 생각하니까. 근데, 정말이지 운명처럼 여름을 좋아하게 됐어.




 올해 맞이 할 여름이 너무 기대 돼. 우리가 더 가까워질 거라고 믿어. 세상이 온통 자신들을 뽐내고 있잖아. 그 속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거라는 묘한 확신이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기대. 그래서 조금은 과감해질 수 있겠다고. 이 계절만큼은 나의 선명도가 한층 높아지겠다고. 해상도를 밝히는 일처럼, 투명한 나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고.


 “우리 이 여름을 만끽하자”라는 말이 내가 얼마나 용기를 내서 하는 말인지 느끼겠니? 과감히 그 속에 뛰어들겠다는 말이야. 그래서 여름이 끝나도 난 아쉽지 않을 것 같아. 다음이 있으니까.

 우리 오래도록 이 여름을 만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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