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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Dec 19. 2023

작은 학교 살리기

전교생 60여 명의 작은 학교 ㅇㅈ 초등학교 운동회날이다. 작은 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의 잔치가 되기도 한다. 동네 어르신들의 점심은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학부모님들이 학교 급식실에서 음식을 제공해 주는 식사 당번이다. 같은 지역 신도시의 일반 학교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학교 운영위원이 함께하는 농악놀이가 이어진다. 저학년은 소고를 잡고 고학년은 징, 장구, 북을 친다. 기수가 되어 깃발을 들고 가는 덩치가 큰 고학년 아이도 있다. 선생님은 꽹과리를 치고 학부모 운영위원은 태평소를 분다. 옷은 하얀 바지저고리를 입고 삼색 띠를 두르고 있다. 아이들의 머리는 삼색 꽃이 매달린 고깔을 쓰고 신나게 참여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함께 춤을 추며 즐기기도 한다. 


  처음 교감 발령이 나고 맞은 작은 학교 운동회였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는 운동회 학생으로 학교에 다니던 시절과 교사로 학교에 근무했던 시절을 모두 해도 그해 그날의 운동회는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너무 감동하여 운동회가 끝나고 교감인 내가 조회대에 올라 청군, 백군의 성적을 발표하러 올라가 발표하기 전 운동장에 모여선 분들 앞에서


  “여기 모이신 모든 분의 모습이 영화 속 장면의 인물처럼 그려지고 저도 영화 속의 한 인물로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고 소감을 말했던 기억이 있다. 운동회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너무 크게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영화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서로서로 주어진 일을 먼저 나서서 해 주었고 선생님들 사이의 끈끈함은 모두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거리가 멀어 등교하기 힘든 아이들을 교사들은 출근하면서 아이의 집으로 가서 데리고 왔다. 하교 후에도 집이 먼 아이들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시골 학교로 찾아들어 온 다문화가정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따뜻이 돌보고 있다는 것 또한 잊을 수 없다.      


  4, 5, 6학년 고학년은 모든 아이가 해금을 연주할 수 있게 지도하여 지역사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 공연팀으로 나가서 발표하기도 했다. 고학년 전교생이 참여하는 해금 연주 팀이라는 것은 작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원하는 아이는 플롯도 배울 수 있고, 오르간도 10대를 지원받아 배울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불법체류 아버지가 본국으로 갑자기 송환되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선생님들의 헌신을 알기에 나도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았고 큰 학교에서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이 작은 학교인 이곳에서 가족처럼 지내니 어려움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학교의 소규모화 필요성에 대해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주장도 해 왔다. 작은 학교, 그리고 학급당 학생 수 줄이기의 필요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은 교실은 교사의 한 학생에 대한 보살핌의 기회가 당연히 줄어들게 되어 있다. 집집마다 한·두 자녀로만 구성된 요즘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기에게만 관심 주기를 바란다.      


  입학 시기가 되면 작은 학교들은 비상이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 한·두 명 차이로 학급하나가 줄어들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학교는 학교의 좋은 프로그램들을 홍보하러 다니기도 한다. 때로는 신문지 전단지처럼 학교의 좋은 프로그램 홍보자료를 만들어 동네를 돌면서 아파트 관리사무실이나 학부모가 모인 곳으로 가서 홍보하기도 했다. 자기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인근 학교로 아이가 빠져나가면 그 학구의 학생은 줄어들게 되어 있다. 조삼모사다. 갑자기 아이들이 어디서 태어나는 게 아니다. 6년 동안 자라 온 아이들의 수는 일정한 것이다. 그 아이들을 서로 자기 학교로 모셔 오려고 한다. 자연적으로 아이들도 자기가 귀중한 존재임을 안다.      


  교감으로 발령을 받기 전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하고 있을 때 일이 기억난다. 점심시간의 일이다. 학교에서 급식실로 아이들이 줄 서서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 식단 중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 하나가 있었다. 모두 하나씩만 주어야 한다. 그런데 1학년 아이 한 명이 하나를 더 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다. 그 아이를 주면 다른 아이들도 눈을 초롱초롱 뜨고 모두 하나 더 달라고 할 기세로 바라보고 있다.     


  “급식 선생님, 이것 하나 더 주세요.”

  “이건 안 돼, 다른 것은 다 먹고 나서 부족하면 더 줄 수 있어. 다 먹고 다시 와.”

  “힝~~, 나 그것 하나 더 안 주면 전학 갈 거야!”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도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고, 학교의 좋은 프로그램 운영으로 아이들을 많이 모셔 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들이 근본적으로 좀 더 많아야 한다.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 “응애응애” 울음소리가 크게 울리는 대한민국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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