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한 감정으로>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친정 엄마를 모시고 모처럼 우리부부가 작은 아들, 작은 며느리, 손녀가 먼저 가 있는 제주 여행에 함께 하기 위해 출발했다. 요즘 세상에 작은 새 아기는 시부모가 시외할머니까지 모시고 가는 여행에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하니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고맙다. 게다가 먼저 가서 렌트카를 널찍한 봉고로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세 명이 비행기에 자리 잡고 앉았다. A, B, C 좌석 중 모처럼 하늘을 나는 시간이니 엄마께 하늘을 볼 수 있는 창가 좌석 A에 앉도록 해 드렸다. 그리고 나와 남편이 차례로 앉았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기분이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팔순 노모는 신이 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래도 비행기는 얼마든지 탈 수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잘 탄데이. 걱정하지 말거래이”
남편도 장모님 모시고 여행하니, 사위 노릇 한 티를 좀 내고 싶은지 한마디 한다.
“내년엔 일본이라도 한 번 더 모시고 가자구. 가서 장모님 좋아하시는 욕간도 가고.”
“알았어요. 고마워요.”
엄마도 즐거워하고, 남편도 사위노릇 크게 한다는 생각에 기쁨이 한가득 인듯하다. 사람에게는 인정욕구가 있다. 남편의 사위노릇 인정, 해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륙하기 전까지 핸드폰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혹시, 그 사이 큰아들이 ‘전화라도 주었을까, 문자라도 보내었을까.’ 하면서.
핸드폰은 아무리 보아도 깜깜 무소식이었다. 큰아들도, 큰며느리도.
‘분명히, 자주 올라오지도 않는 외할머니가 안동에서 올라와 계시다가 동생이 제주도 여행을 시켜드린다고 해서 함께 하는데….’
친정 엄마나 남편 앞에서 분위기 깰까봐 말을 할 수는 없고, 혼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용돈을 챙겨드린 것도 아니고, 잘 다녀오시라는 말도 없고.’ 속으로만 삭히고 있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작은 아들은 럭셔리하고 널찍한 좌석이 구비 된 봉고차를 준비해서 신나는 얼굴로 나타났다. 남편이 렌트를 했으면 우리식구가 비좁게 앉아서 꾸깃꾸깃 타고 다닐 만큼 실용적으로라는 명목으로 싼 가격대의 승용차를 끌고 왔을 것이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지만, 태생부터 개발도상국 국민이라 돈쓸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고, 요즘 아이들은 선진국 국민으로 태어나 아무리 돈이 없어도 돈쓰는 재미로 폼 나게 살아간다고 하더니 딱 맞는 말이다.
이렇게 럭셔리한 차에 온 가족이 함께 하고 있으니 신나고 즐거운데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혹시, 비행기에서 비행기모드로 하고 있는 동안 무슨 연락이 온 건 아닐까하고.
핸드폰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무소식. 기분이 언짢았다. 갑자기 문자로 뭐라고 한마디 할까? 전화를 해서 호통을 쳐버릴까? 하다가 꾹 참았다. 어쩌면 아직 늦은 아침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겠지….
<깜짝 이벤트>
제주도 바닷가는 맨발걷기하기 좋다. 괜히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그래, 건강해지는 기분으로 즐겁게 지내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사진도 찍고, 손녀는 재롱을 떨며 끈임없이 재잘거린다. 레드향 한 바구니를 사니 력셔리 한 차안은 향긋한 레드향으로 더 풍성해진 기분이다. 그 분위기 살려 온 가족이 즐겁게 지내도록 해야 하기도 하니 서운한 감정은 숨기기로.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감감 무소식. 이젠 괘씸하지만, 체념했다.
작은 아들이 점심을 먹는 곳으로 맛집을 찾아 간다고 한다. 형이 소개해 준 집이라고 하면서. 형제가 서로 연락하면서 맛집을 찾아주고 하는 듯 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래도 못들은 척했다. 양쪽 길가 유채꽃이 만발해서 너무 이쁜 길을 돌고 돌아 한참을 갔다. 역시, 제주도 관광은 언제해도 좋다.
얼마쯤 가다가 식당이 아닌 곳인데 작은 아들이 잠시 내려 꽃구경하고 가자고 한다. “뭐, 그래도 되고, 안 그래도 되고.”
친정 엄마와 나는 차안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니 모두 다 내려야한단다. 하는 수 없이 내려서 밖으로 나갔다.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니 보기에 너무 좋고 사진도 찍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가와 아는 사람인 체를 한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옆으로 지나가려고 했다. 갑자기
“엄마!”, “할머니!”
“이기, 무슨 일이고?”
갑자기 깜짝 놀라서 내입에서 사투리가 튀어 나왔다. 큰아들과 큰며느리, 손녀가 앞에 나타났다. 애들이 가까이 와서 아는 체 해도 나는 전혀 몰랐다. 모르는 사람이 왜 이러나 하면서 옆으로 비키려고까지 했다.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가 쿵짝이 되어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 조연은 아들들이었다. 외할머니 선물까지 준비한 애들이 새벽 일찍 일어나 서울에서 첫 비행기로 제주까지 날아 온 것이다. 그 날 하루를 함께 보내기 위해서.
‘아고야, 아들에게 서운하다고 연락했으면 우짤뻔 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