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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Nov 03. 2024

아해사랑

아이 마음 읽기

  요즘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 운동화를 신고 다니니 서서 가도 부담이 없다고 공언을 하고 나니 지하철에서 정말 많이 피곤하지 않으면 앉지 않으려고 한다. 빈자리가 많으면 그래도 앉긴 한다. 오늘 아침은 어젯밤 늦게까지 공연을 보고 와서 그런지, 너무 피곤하다. 마포평생 학습관에 오전 강좌 하나를 신청해 두었던 것을 취소하고 싶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취소해 보려 했으나 당일 취소가 되지 않아 피로하지만, 거의 억지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가 보니 쳇 GPT에 관해 궁금해했던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알게 돼서 잘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포평생학습관을 다녀오면서 너무 피곤한 몸을 끌고 지하철을 탔다. 낮 시간이라 지하철은 한산했다. 눈에 띄는 아이가 있다. 

 지하철에서 예닐곱 살쯤 되는 어린아이와 나이 좀 든 아빠가 함께 가고 있었다. 빈자리가 하나 나자 아이를 먼저 노약자석에 앉혔다. 그리고 이후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 빈자리가 나자 아빠가 그곳으로 가 앉았다. 아이와 아빠가 멀찍이 떨어져 앉게 된 것이다. 

 아이가 아빠께로 쪼르르 달려와 안겼다. 그러자 아빠가 맞은 편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그곳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아이는 가지 않았다. 마침 아빠 옆자리가 또 주르륵 비었다. 아들은 아빠 바로 옆에 앉았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아빠가 아들을 옆자리로 밀며 한 칸 옆으로 가도록 했다. 아들은 가지 않으려고 아빠 쪽으로 더 밀었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밀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지하철은 끝자리가 명당자리이다. 아빠는 지하철 끝자리가 비었으니 그곳으로 가자는 뜻인 것 같은데 아들은 아빠가 자기를 밀어낸다고 생각한 듯하다. 밀어도 안 가려고 하니 아빠가 일어서서 끝자리로 가서 앉으려고 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빈자리 세 칸 모두를 차지하며 의자에 누워버렸다. 심술이 난 듯 아빠가 자리에 앉지 못하게까지 하고 있다.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좀 전에 아빠가 자기에게 하듯이 건너편 빈자리를 가리키며 그리로 가라고 한다. 좀 전에 아빠가 아들에게 한 것을 그대로 한 것이다.

 아빠는 난감해하고 있다. 지하철은 한산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세 자리를 차지하며 누워 있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이가 다칠 수도 있다. 건너편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아이를 혼낼 수도 없다. 그냥 아이를 보고만 있다. 어찌해야 할지 어설픈 상황이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나름, 오랜 교직경험으로 나는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는 아빠가 좋아 앉아있던 자리를 그대로 두고 아빠 가까이로 온 자기를 건너편 빈자리로 가서 앉으라고 한 것이 서운했을 것이다. 그리고 옆의 빈자리가 생기자 그쪽으로 가라고 한 것 또한 자기를 밀어낸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빠가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안타까웠다. 내가 내려야 할 목동역이 다음역이다. 내리기 전에 아이의 마음을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나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멀리 서 있다가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좀 전에 아이가 아빠와 같이 앉고 싶어서 왔을 때 아빠가 건너편으로 가서 앉으라 해서 섭섭했을 거예요. 그래서 아빠도 건너편에 앉으라 한 거구요. 아이가 이해가 되어요.”

 이해하는 듯 보였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 후 상황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나는 목동역에서 내렸다. 나이 든 아빠지만, 아빠가 된 건 처음이지 않았을까? 아빠가 아이를 이해해 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은 엄마, 아빠의 나이들이 많다. 결혼하기 전 오랫동안 각자가 자기중심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결혼 후에는 대부분 아이를 중심에 두고 살게 된다.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자유롭게 살다가 자녀 중심으로 살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너무 아이 중심으로 살아서 아이가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아이돌보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처음으로 자기중심적인 아이와 함께 하면서 표현이 서툰 아이의 마음을 읽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나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았다. 아이의 마음을 읽겠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살아가는 시간 시간에 급급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아이 마음 읽기를 생각하고 있다. 내 엄마도 젊은 시절 그랬을 것이다. 요즘은 아이 마음 읽기를 위한 프로그램도 많고 공부하는 부모도 많다.

 아이의 마음 읽기, 아이에게 집중하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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