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하트 조련사
어느 날, 카페 문을 열고 세 분의 할머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롯데캐슬 아파트로 이사 오셔서 동네 구경을 하던 길이라며 수줍게 웃으시던 그분들.
그것이 우리와 한 경상도 할머님의 깊은 인연, 그 시작이었습니다.
사장님을 길들이는 '라테의 여왕'
우리 사장님은 손님들께 나가는 따뜻한 라테 위에 늘 정성스레 하트 아트를 그립니다.
그런데 이 경상도 할머님은 사장님을 들었다 놨다 하는 최고의 '조련사'셨습니다.
입맛은 또 얼마나 확고하셨는지요.
멀리 에서 식사를 하셔도, 자식들이 놀러 와 외곽 가서 외식을 하셔도, 커피만큼은 꼭 이 작은 카페에 와서 드셔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할머님은 오직 '카페라테' 한 우물만 파셨는데,
그 즐거움의 팔 할은 사장님이 그려내는 하트에 있었습니다.
"사장님! 오늘은 나에 대한 마음이 쪼금 찌그러졌나 보다!" (하트가 조금 비뚤어진 날)
"나에 대한 애정이 아주 커졌구먼!" (하트가 유난히 큼직한 날)
"사장님, 나에 대한 마음이 요래 작아서야 되겠어?" (하트가 작고 귀여운 날)
할머님이 들어서시면 강 사장님은 내심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어? 할머니 오셨다..."
나지막이 읊조리며 스팀 피처를 잡는 손끝에 잔뜩 힘을 주던 그 뒷모습. 호탕한 성격에 농담도 잘하시던 할머님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을 유쾌하게 휘어잡으셨습니다.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최고'의 엄지
가끔 할머님이 한 달 넘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같이 오시는 친구분들을 통해 몸이 편찮으셔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신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부쩍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할머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병원 외출 중에 친구분들과 식사를 하시고는,
"오늘 꼭 그곳에 가서 커피 마셔야 한다"
며 고집을 부려 오셨다고 했습니다.
사장님은 그날따라 더욱 정성을 다해 우유 거품을 올렸습니다. 할머님은 그 라테를 한 모금 드시고는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셨습니다.
"최고다"
라는 짧은 찬사와 함께, 다음에 올 때는 더 훌륭한 하트를 보여달라는 숙제를 남기신 채 할머님은 다시 병원으로 향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본 할머님의 마지막 미소였습니다.
코로나의 긴 터널 끝에 들려온 소식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시대가 왔습니다. 집합 금지 명령이 떨어지고 거리가 적막해질수록 우리는 할머님이 걱정되었습니다. '몸이 약하시니 댁에서 안 나오시나 보다'라며 애써 위안 삼았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하신 할머님의 친구분으로부터 들은 소식은 너무나 시린 충격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들렀던 그날, 병원으로 돌아가신 할머님은 며칠 뒤 조용히 하늘의 별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가장 어르신답게 응원해 주시던 분.
"잘 될 거다"
라며 투박하게 토닥여 주시던 분. 사장님을 훈육 아닌 훈육으로 긴장시키며, 그 친절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셨던 분.
전하지 못한 말,
"덕분에 잘 컸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 할머님이 그립습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보고 싶고 그리운 인연 하나쯤 품고 살겠지만,
우리에게 그 어르신은 기둥 같은 존재였습니다.
다시 한번만 딱 한 번만 기회가 있다면,
할머님께 그 시절의 '맛있지만 조금은 엉성했던 하트 라테'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고백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님. 지금은 예전처럼 엉성한 하트를 만들지 않을 만큼 숙련되었지만, 그때 그 장난 섞인 말씀과 응원 덕분에 우리가 8년이나 지킬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컸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그곳에서도 아주 크고 예쁜 하트가 그려진 라테를 마음껏 즐기고 계시길 빌어봅니다. 라테의 하트는 오늘도 당신을 기억하며 피어납니다.
글을 마치며...
혹시 여러분에게도 다시 만나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인연이 있으신가요?
오늘 그분을 떠올리며 따뜻한 라떼 한 잔 어떠신지 제안해 봅니다
-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