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때 죽지 않아 다행이었어

by MSG윤결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진짜 자살시도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난 그저 살고 싶었다

그냥 나 좀 바라봐주라고 몸부림쳤던 고통이었다.




눈을 감으면 끝일 줄 알았다.

그때는 그렇게 믿었었다. 숨이 멎고 시간이 멈추고,

내 흔적까지 세상을 떠나버리면 모두가 편안해질 거라고..

나 또한 이 지긋지긋한 혼란에서 놓여날 수 있을 거라고.

그건 소망이라기보다 구걸스러운 바람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나를 맞이한 건 차가운 병실도 아니었으며

늘 보던 천장 아직 내방,

비좁은 방 안에 고여 있던 눅눅한 공기,

그리고 여전히 나 혼자라는 지독한 현실 그 자체였다.

현실을 자각하고 나서 일까, 속이 뒤집혔다.

위장이 독한 약들을 견디지 못해 내 속은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그 처절한 순간에도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작은방에서 기어 나와 화장실 문을 열었다.

타일 바닥이 눈앞에 보일 만큼 낮은 시선으로 기어올라 변기를 붙잡았다.

입안에 고여 있던 쓰디쓴 약들이 터져 나왔다.

쏟아내는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눈물이 함께 터졌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너무 외로워서, 철저히 버려졌다는 그 기분 때문에,

살아 있는 이 시간이 너무 허망해서 울었다.


그때 알았다. 죽는 건 생각보다 간단치 않고,

살아내는 건 내 의지보다 더 모진 일이라는 것을..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찾아올 사람도, 내 안부를 물어줄 이도 없는 집은 그날따라 유독 넓어 보였다.

아무도 모르는 밤, 누구도 감당해주지 않는 이 절망을 오직 혼자서 삭여야 한다는 사실이 참 잔인했다.


‘내가 태어난 게 문제였을까.’


열일곱 살이 품기엔 너무 가혹한 질문이었지만,

그날의 나에겐 가장 정직한 물음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자살 시도는 끝이 났다.


그해 여름, 대학병원 정신과에 한 달을 누워 있었다.

엄마는 항상 없었다. 아빠에게는 내 병원에 같이 있겠다 했지만 사실은, 엄마는 그 남자와 시간을 보내려

나를 병원에 홀로 두고 가버렸다, 엄마는 그 남자에게 이혼하며 둘째 딸은 전남편이 데려갔고, 첫째 딸은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노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는 있어서도 안되고 그 사람이 알아서도 안된다고... 그리고 지금 병원에 있는 건 자신이 몸이 아파 입원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가 그 남자에게 온갖 도움을 받는 동안, 나는 병원 침대에서 멍하니 천장만 보았다.


퇴원하는 날에도 엄마는 나보다 그 남자였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나 원망 따위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나라는 아이는 엄마의 삶에 방해만 되는 존재인가’라는 서글픈 질문만 남았다



부서지듯 무너졌다. 열일곱 살이 제정신으로 버티기엔 세상이 너무나 가혹했다.

그날도 역시나 텅 빈 집, 아무도 없었다.

퇴원하고 집에 왔지만 나 혼자라는 생각에 너무 비참했다.

그래서 배도 너무 고프고, 냉장고 문을 열어 둘러보았다.

그러다 구석에 있던 소주병이 보였다.

소주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수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이렇게 살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쓴 술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한 달 치 약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만하자” 는 목소리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들 뿐이었다.

그 독한 약들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는 행동이,

나를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잠시나마 놓아줄 유일한 비상구 같았다.


아침이면 영영 깨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비정하게도 다시 눈이 떠졌다.

이해할 수 없었다. 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사라지고 싶었을 뿐인데,

왜 세상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지. 서러움이 복받쳐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토사물 냄새가 진동하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내가 죽었어도 며칠 뒤에나 발견됐겠지...

이 지옥 같은 고통은 내가 죽어야만 끝나는 건가. 미칠 것 같았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삶을 다시 살아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다르게 살자 결심했다. 그렇다고 뭐 거창한 결심은 아니었다.

죽지도 못할 팔자라면, 차라리 견뎌보자고.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나를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처를 가슴 깊은 곳에 묻고 그저 하루를 버텨내기로 했다.


내 상처를 누구에게 구태여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구질구질하게 설명하며 이해를 바라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저 내 몸 어딘가에 박힌 오래된 흉터 하나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말없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쉽게들 말한다. 그때 얼마나 힘들었겠느냐고.. 얼마나 외롭고 괴로웠겠느냐고..


하지만 그들이 뭘 알까. 그때 내가 어떤 얼굴로 울었는지,

얼마나 간절히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었는지를..

그리고 이 모진 생을 결국 끊어내지 못하고 살아냈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으면서도 징글징글한 일이었는지를.

살아남은 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그저 죽을 날이 아직 아니었기에,

남겨진 생의 몫이 지독하게도 남았기 때문이라 믿으며 버텼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깊고 어두운 밤을 홀로 건너온 사람만이, 제 힘으로 그 어둠을 밀어내며 아침을 맞는다.

나는 그 긴 밤을 통과해 왔다. 아무도 모르는 어둠을 지나, 내가 죽으려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세상 속에서 묵묵히 발을 뗐다.

그냥 사니까, 어찌어찌 살아졌다.


“잘 버텼다, 나.”

마음 밑바닥에서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 이 한마디가 나를 붙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살아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