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악몽을 꾸었다.
그 꿈에는 엄마와 평생 외도를 하던 남자가 나왔다.
꿈속의 나는 낡은 아파트 같은 집에서 어린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나가지 않겠다던 엄마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고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밖으로 나갔다
무작종 하염없이 엄마를 찾아 헤맸다.
주차장을 걷다 보니 익숙한 차량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차였다.
나는 주차장 입구에서 엄마가 내릴 때까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 문이 열리고 엄마가 내리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는 달려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아직도 저 남자랑 같이 있어?"
"여기서 뭐 해! 당장 들어가!"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나는 차에 있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엄마가 나를 잡아당겼지만,
그 순간만큼은 엄마를 이겨낼 만큼 힘이 들어갔다.
남자가 차에서 내려 휘청거리는 엄마에게 다가오려 하자, 나는 그의 팔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여기 왜 오시는 거예요? 대체 왜 자꾸 나타나는 거냐고요! 아직도 두 사람 사이가 유효한 거예요? 당신이 우리를 평생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기나 해요? 제발, 제발 좀 만나지 마세요!"
남자는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네 엄마와 나 사이의 일이지."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으며 그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제발 다시는 오지 말라고.. 제발 좀 그만 만나라고.. 제발 좀 사라져 달라고..
하지만 남자는 내 손이 거슬린다는 듯 툭 털어내고는 다시 엄마에게 다가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울고 있는 내게, 엄마가 차갑게 말했다.
"집에 들어가 있어. 가서 동생 밥이나 챙겨줘."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나무는 싱그럽던 그 어느 날.
나는 가지 말라며 울부짖다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아팠고,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예전에 상담받았을 때, 상담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
지금 이 순간까지 괴로운 건 나 자신일 뿐이라고.
그 말이 맞다.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스스로를 속여왔다.
'괜찮아, 다 잊었어. 이제 생각도 안 나는걸.'
하지만 다 잊었다고 호언장담하던 나는
아직도 가끔 불쑥 튀어 오르는 그 시절의 기억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사실은 무서웠다. 내가 아직 잊지 못했고
여전히 아프다는 걸 인정해 버리는 순간,
그 지옥 같은 기억이 다시 생생한 현실이 되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건,
어쩌면 내가 그동안 '이런 일이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참으로 무겁고도 슬픈 악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