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2

아픈 자식은 쓸모없어!

by MSG윤결





다른 사람들의 어릴 적 집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다.

집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시끄럽고 허구한 날 싸우는 집이었을까?

다른 아이들도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나처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까?




어느 날부터인가 이유도 모른 채 하혈을 했다.

대학병원에 가보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원인을 몰랐다.

그렇게 하혈을 하는 동안 내 몸은 점점 원인 모를 병이 생기고 있었다.

기저귀를 찬 채 누워 있는 내 몸보다

엄마 아빠의 고함소리가 집안 전체에 가득 채운날들이 허다했다.

그리고 집에 엄마가 없는 날이 많았다.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나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나는 종종 그 텅 빈 집에 홀로 있던 적이 많았다.

아빠는 술이 물인 양 매일 마시고 들어왔고,

집은 금세 폭발 직전으로 변했다.

엄마가 집에 있던 날도 다르지 않았다.

하혈이 심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핏덩어리가 쏟아졌다.

다리가 피로 끈적하게 젖어드는데도 그 둘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울며 불며 아프다고 해도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했고,

제발 좀 그만하라는 내 말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러다 결국 나는 터져버렸다.


제발 그만 좀 싸워! 나 아파, 아프단 말이야!”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는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죽어! 아프다는 소리 진절머리 나!”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순간 큰 충격이었다.


나는 부모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할 자식이 아닌데.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는데..’ 싶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려서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음 어딘가에선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건 정말 잘못됐다는 걸..



피는 계속 다리 사이로 흘렀고,

내가 주저앉은 벽은 피로 물들었다.

집 안에는 여전히 욕설이 흐르고 있었다.

도저히 멈출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 좀 와줄 수 있어?”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 내가 얼마나 절박했는지 친구는 알았던 것 같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오겠다고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친구는 정말로 왔다.

문을 열자마자 집 안을 뒤덮은 고함과 술 냄새를 본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친구를 이런 상황에 세워두는 것조차 미안하고 창피해서,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다리 사이로 피가 새고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거실로 나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억지로 서서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진짜 지긋지긋해! 이 집구석 나갈 거야! 둘 다 제발 그만 좀 해!


그 순간 부모님의 싸움이 멈춘 건 아니었지만,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고요함이 흘렀다.

나는 울지 않았다. 울면 약해질 것 같아서, 울면 또 무시당할 것 같아서.

대신 화장실 문을 닫고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피를 닦아내고 기저귀를 갈고,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친구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갈 곳도 없었지만 그냥 나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걸었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버스정류장까지 몇 걸음 떼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렸고 두통이 심해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친구는 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음을 멈추라고도, 괜찮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곁에 있어 주었다. 그게 그날 나에게 가장 큰 위로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지만 나는 안다.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 집에서 나를 지켜야 한다. 나를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너무 불쌍하다


그날 이후 나는 부모의 싸움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상처는 계속 생겼지만 그 상처를 이겨낼 힘도 조금씩 생겨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날 버스정류장에서 울던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부모보다 먼저 삶의 잔혹함을 배웠고,

부모보다 빨리 책임을 배웠으며,

그들보다 더 어른스럽게 나를 돌보았다.


지옥 같은 집 안에서도 발버둥 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날의 피, 그날의 수치심, 그날의 울음과 친구의 침묵. 그 모든 것을 난 잊지 않았다.


나는 부서지지 않았다. 흔들렸고 다쳤고 쓰러졌지만 끝내 부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나는 필사적으로 삶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당신들의 나에게 했던 말들을 기억할 것이며,

그날의 나를 죽을 때까지 기억하겠노라고.



-윤결

화, 수,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