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책임진다는 것
발레리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우아하고 절제된 감정 표현 이면의 진실, 자신의 한계 너머에 도전하며 통증을 견디는 발레리나의 모습은 삶에 지쳐있는 순간에 용기를 준다.
영화 ‘Girl’은 처음엔 단순한 제목에서 특별한 기대가 없었지만, 영화를 감상한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 하나의 단어로 귀결되기까지 실제 인물과 주연배우와 감독은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두려움과 불안으로 점철되었다. 16세 소녀인 주인공 라라의 내적 갈등이 핵심인 영화라서 라라의 감정선을 동행하게 되었다. 마지막 부분이 다가오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라라는 끔찍한 자해를 시도한다. 라라의 자해는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삶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는 큰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을 밟고 일어서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라라의 자해는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는 결정적 순간의 은유이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자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고뇌와 두려움으로 고군분투하는 라라의 모습이 우리들 삶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라라의 선택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해 주는 한 사람,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나' 자신에 관해 늘 생각하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자유로워지기를 열망한다. 나를 알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린 소녀 라라는 자신의 삶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타인의 생각이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고, 그것을 선택하기 위해 고통의 순간들을 받아들이고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 행위,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이다.
부드럽지만 잔인한 영화, 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을 믿으며 발화(發火)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그녀의 자해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비로소 온전한 자기로 당당히 서는 해결이었다. 고통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