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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뮈 Jan 20. 2023

쓸데없는 완벽주의

사는 게 지겨워질 때

나는 아주 가끔씩 번아웃을 경험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를 지키지 않고 감시 카메라도 의식하지 않은 채 항상 과속으로 달려왔다. 쉼은 불안을 강화시키고 노력하지 않는 나태함은 완벽주의자가 용납할 수 없는 태도였다. 번아웃은 제한 속도를 지키지 않았을 때 날아오는 속도위반 딱지이다. 삶의 속도에 대한 내 무의식이 나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완벽주의와 관련된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회피, 몰입, 불안, 착각...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회피란 바람직한 방어기제는 아니다. 해결되지 못한 심리적 어려움이나 현실 속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스스로 감당하기 버거워 다른 일에 에너지를 쏟게 된다. 그러므로 엄청난 집중력이라는 능력을 얻게 된다. 집중력이 과도해지면 속도 감시 카메라를 보지도 못하고 질주하는 몰입의 경지로 가는 것, 완벽주의자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를 억누르고 감추는 회피는 무의식에서 불안을 가중시킨다. 남들의 실수는 허용되지만 내 실수는 용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빈틈이 없다.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성실해야 하며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착각을 하게 된다. 나는 잘할 수 있고 나는 좋은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게 다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가치가 있는가?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사는 것이 지겨워질 때가 있다. 나를 완벽한 인간으로 규정해 놓고 나 자신을 위험한 고속도로 차 안에 가두어 놓은 채 누구를 위해 그렇게 질주한 것인가.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보살펴 주었을까. 내가 아픈지 우울한지 화가 나는지, 자세히 관찰을 해보았을까.


사는 게 지겨워지는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결과이다.  나를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온전한 나로서 표현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느린 속도로 가든 가다가 멈추든 내 삶의 제한 속도는 지켜줘야 한다. 때로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느끼게 하더라도 내 인생에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완벽주의는 지혜가 자라날 틈을 주지 않는다. 쓸데없는 완벽주의다.


[Johannes Gumpp Roberto, Self-portrait, 1646]


요하네스 굼프는 거울 통해 보이는 자신을 보면서 자화상을 그리는 자신의 뒷모습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 붓을 들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 아닐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도 사는 게 지겨울 때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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