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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식이 Nov 21. 2024

가난의 상징

밤마다 울부짖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창문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발걸음

도로를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의 경적 소리

술 취한 사람들의 욕설과 싸우는 연인들

벽 틈새로 사정없이 들어오는 겨울바람

내 옷들을 기억하는 사람들

좋은 동료들과의 만남을 거절해야 했던 평일 저녁 퇴근날

참새인지 바퀴벌레인지 알 수 없는 천장의 긁히는 소리

누가 요즘 열쇠를 갖고 다니냐며 모두 웃을 때 웃지 못하는 나


곰팡이가 핀 하나밖에 없는 갈색 구두

중문 밖 대문 옆에 있는 화장실

보일러가 어는 걸 막기 위해 보일러를 감싼 이불

여름마다 어디선가 나오는 모기와 종종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

화장실의 깨진 타일과 임시방편으로 붙여놓은 테이프, 그리고 몇 년 동안 붙어 있는 테이프.

물이 튀어 주기적으로 고쳐야 하는 화장실 안 세탁기

공간이 없어 소변을 옆으로 눠야 하는 변기

엘리베이터가 없어 가구를 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집

곰팡이가 가득한 벽과 대충 덮어 놓은 임시 벽지

근처에 지하철 역이 생긴다는 소식에 집 값 오르니까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웃을 수 없던 나


햄버거 집 앞에 멈춰 서서 10분을 고민하며 침을 몇 번 삼키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나

대기업 월급도 부족하다며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고개 숙일 수밖에 없던 나

15분 걸리는 버스를 타지 않고 45분을 걷는 나

어디 쓸 데가 있을까 싶어 회사의 볼펜 몇 자루를 훔쳐온 나

메가커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하는 동료들을 보며 탕비실에서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는 나

장비가 필요 없는 운동을 하기 위해 러닝을 해보려다가 가까운 공원이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동네에 산다는 걸 알고 포기한 나

가끔 미안하다며 울먹거리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나

결혼식에 가서 박수만 치고 박수는 받을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나


그래도 가난하지 않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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