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많은 친척들이 모였다. 누군지도 잘 모르지만 가끔 모이는 어른들과 명절 음식 한 가득했던 추석이 생각난다. 특히 우리는 모여서 송편도 직접 빚어 만들어먹곤 했다. 가을이 되면 대추나무에 대추가 달리면 따다 주는 친척 형들도 있었고 밤나무에 밤이 나서 나무 밑에 돌아다니는 밤송이를 직접 발로 밟아 가시투성이 껍질을 벗겨내고 나온 알밤을 모아다 아궁이에 넣고 군밤을 해먹기도 했다. 참으로 소중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로 돌아갈 수도 그때의 분위기를 흉내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무슨 때만 되면 차가 막혀도 달려가는 시골은 어린 나에겐 힘든 여정이었고 화장실부터 잠자리까지 뭐 하나 편한 것도 없었던 거 같은데 지금의 AI도 만들어 줄 수 없는 이제는 흐릿해져 가는 기억 속 모습들이 점점 소중해져 간다.
지금은 먼 친척집을 가지도 않고 전도 조금만 부치고 떡도 사다 먹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문득 이것마저도 나중에 소중한 기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은 항상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없기도 했다. 그저 바쁜 일상이 추석연휴조차 침범해서 명절의 여유마저 느낄 수 없을 때 명절 같지 않은 그 느낌은 정말 큰 아쉬움이었다. 어느 날 일을 하고 집에 못 가거나 일을 하며 못 가는 날도 있었다. 누가 사다 주지 않는 이상 가족과 함께 먹는 떡이며 전이며 그런 것들이 평소 찾지도 않는 것들인데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정신없이 명절 느낌 없이 그저 긴 주말 같은 느낌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응급실로 환자가 왔다는 콜을 받을 때가 있었다. 명절이 되어 같이 살지 않던 자녀가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을 보고 몸이 좋지 않아 보인다고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오는 경우들을 본다. 그런 환자의 자녀 보호자들이 다 불효자는 아니다. 부모님들은 연세가 있으실수록 어느 정도 불편한 것은 아예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자녀들이 괜히 걱정하거나 신경 쓸까 봐.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흔한 모습인데 명절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의 아픈고 힘든 부모님들 소식을 모르고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가까운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명절 음식들과 제사나 차례와 같은 의식들에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것들이 다 신경 쓰기 어렵고 부담되게 느껴지는 것도 항상 진행형이었다. 영상통화가 가능한 스마트폰도 흔히 갖고 있는 물건이 되었지만 직접 만나고 손잡고 어루만지며 부대끼는 것을 대체하지 못하는 건 분명하다. 금세 돌아오는 명절 같고 귀찮은 것들이 있을지 몰라도 가까운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밥을 먹는 그 자체가 정말 좋은 것이다.
지금도 명절이 되었지만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가고 싶어도 본가에 가지 못하고 여러 현장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들, 시험을 앞두고 혼자 엄청난 공부와 합격의 스트레스에 말 못 하고 혼자 보내는 수험생들, 일을 하기 싫은 것도 아닌데 여러 이유로 적절한 일터를 찾지 못하고 따라서 경제적인 여유 없이 돈이 모이기만을 기다리는 구직자들 등등 다양한 이유와 위치에서 혼자 추석연휴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환경적인 고립은 심리적인 고립을 만든다. 그 외로움은 단지 기억하지 싫은 추억이 아니고 내 마음에 남는 보이지 않는 결핍의 상처일 수도 있다.
명절이면 어떤 식으로든 분위기를 내보자. 시장에 가면 명절음식을 하는 곳들이 많이 있다. 전을 부치는 냄새와 소리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조금이라도 좋고 맛있는 것을 사려는 우리의 부모님들이나 가족들의 모습도 보인다. 시장이 붐비는 모습도 명절 때 보면 또 다르다. 이런 곳을 돌아다니고 혼자 보내더라도 전이나 떡을 조금이라도 사서 먹어보자. 맨날 먹는 배달음식, 인스턴트와 비교해서 칼로리는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들고 정성이 들어간 걸 먹어보는 건 혼자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주변에 나와 같은 처지의 동료가 있다면 갖고 있는 것도 베풀어보자. 아마도 이런 것만으로도 오늘내일은 다르게 보낼 수 있을 것이고 의미 있는 전과 다른 추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