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일이다. 나는 비교적 말이 없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음악을 좋아했고, 노래 부르기와 듣기가 취미였다. 그다지 노래를 막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친구들이 한 번쯤 입을 벌려 감탄을 자아내는 쪽에 속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가 당시 무지 핫했던 '아하, 프리'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 주셨다. 평소에 너무 갖고 싶었던 거라 기쁜 마음에 학교에서도 들을 요량으로 챙겨서 학교에 갔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한참 노래에 심취해 있던 내 뒤로 담임이 다가오더니 책상 서랍 속에 몰래 숨겨 두었던 아하 프리를 낚아채서 압수해 가 버렸다. 나중에 돌려준다던 담임은 그 학년이 끝날 때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담임은 미혼인데다가 뚱뚱하고 탐욕이 많았는데, 그 당시 나 말고도 물건을 갈취 당하고 끝내 돌려받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탐욕스러운 담임은 나의 소중한 아하 프리를 갈취 한 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그 당시 방과 후 동아리 활동에 내가 희망하던 (기타, 합창, 독서) 동아리를 모두 탈락 시키고, 뜬금없이 나를 단전호흡 동아리에 집어 넣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도리가 없었던 나는 단전호흡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 동아리 선생님인솔하에 학교 근처 산으로 올라갔다.
선생님은 나와 친구들에게 모두 바위 위에 떨어져 앉으라고 했다. 선생님의 지시대로 바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선생님은 배꼽 아래 단전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정신을 온통 단전에 집중하라고 했다. 선생님은 단전 호흡을 통해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면 어느 순간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고 믿고 있었다. 비록 자신은 공중 부양에 실패했지만, 우리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듯 했다.
뭔가 이상했지만, 선생님은 진지했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정신을 온통 단전에 집중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공중으로 떠 오른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그날의 명상은 마무리되었고, 나와 친구들은 오랜 시간 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던 탓에 다리에 쥐가 내려 다리를 절뚝거리며 산을 내려와야 했다.
그 후로도 매주 공중 부양을 위한 단전 호흡이 이어졌다. 그때 우리는 반반의 가능성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구 한 명은 선생님의 간절한 바람대로 공중으로 떠오르게 될지도 모른다른 착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선생님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고 그 학년이 마무리 되었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남편의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남편과 집 근처에 있는 유달산 드라이브를 하다가 남편이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라며 들려주었는데, 차에서 배꼽이 빠져라 웃었습니다.
공중부양이 정말 궁금해져서 여러 방법으로 검색을 해 보았는데, 인류 역사상 단전 호흡으로 공중 부양을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더군요. 그 당시 남편의 동아리 선생님의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어요. 지금도 그 선생님은 그렇게 믿고 계실지 궁금해지더라고요.
무료하고 심심한 삶에 재미 한 스푼 더하시라고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일상을 글로 나눕니다.
글나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