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1학년 때부터 친한 친구네 가족과 며칠 전 함께 식사를 했다. 벌써 6년째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보통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친구네 아빠의 말 중에 내 심기를 건드리는 말이 있다.
자꾸 우리 아들의 작은 키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툭툭 미운 말을 던지기는 하지만 악의는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좋은 말도 아닌 내 자식 비하하는 말을 어디까지 참아줘야 할까?
이야기의 발단은 아이들의 수학여행이었다. 코로나로 한동안 수련회, 수학여행 제대로 다녀보지 않은 코로나 세대들이라 6월에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이 물가에 내 놓은 아이마냥 걱정되었다.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그쪽 아빠가 불쑥 그렇게 걱정돼서 군대는 어찌 보내려고? 하더니 곧 이어서 "아, 민석이는 키 미달로 면제겠네. 걱정 마" 하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지?'
자기 아들보다 키가 작은 우리 아들의 키를 걸고 넘어지는 그 집 아빠의 농담 같은 진담이 귀에 거슬렸다.
"지금 저희 아들 비하하시는 거예요? 아니, 농담이 지나치시네"
내 표정도 말도 예사롭지 않았는지 그쪽 아빠의 표정이 미안함과 난감함으로 순간 분위기가 이상스럽게 되었다.
분명 그쪽 와이프가 남편에게 몇 번 경고를 주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슬쩍슬쩍 던지는 농담에 정색하는 내 표정을 읽었을 것이고, 그쪽 엄마는 선량한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에 남편에게 말실수를 늘 경계하라고 말하곤 했다.
평소에 누군가와 언쟁을 길게 하거나,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이 거의 없는 나라서 그쯤하고 말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하면 스멀스멀 짜증이 밀려 올라온다.
'아니, 우리 아들이 작으면 얼마나 작다고. 그리고 자기 아들이 크면 또 얼마나 크다고 비교 질인지 모르겠네. 그럼 그 집 아들 공부 잘해? 뭐 성적으로 해 봐도 우리 아들 이기나?' 유치하기 짝이 없이 '어디 한 번 해 볼래?' 마음이 나를 마구 선동질했다.
자라면서 친구와 싸움한 번 해 본 적 없는 내가 자식 일에 있어서는 싸움닭이 된다.
"나 다음에는 진짜 참지 않으려고. 남의 귀한 자식 비하하는 발언은 서로 간에 삼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분명하게 말할 거야."
씩씩대며 말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우리한테만 그러겠냐? 누구한테나 다 그런 사람이겠지. 굳이 너도 똑같은 사람 될 필요 있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마는 거지."
남편의 말에 동의하지만 내심 화가 치밀었다. 사람 관계에서 상처를 주는 건 친한 관계가 더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말은 아낄 수록 좋은 거 아닌가? 조심성 없이 툭툭 뱉는 것보다 보다 필요 이상으로 신중한 것이 오히려 낫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말은 아끼고 글은 아끼지 않기로 한다. 말을 아끼란다고 계속 아꼈다면 그 화병을 어찌 감당하고 살았을까?
내 안에 쌓아 두었던 서운함과 불필요한 감정의 찌꺼기를 아끼지 않고 글로 쏟아내었으니 내 안에 묵은 감정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쭈욱 말보다 글이 앞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