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있는 딸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막 하교할 시간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딸이 울먹거리면서 학교에서 남자아이가 머리를 때려서 그때부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딸에게 자세히 말해 보라고 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같은 반 남자아이가 이유도 없이 머리를 손으로 드럼을 두드리듯이 세게 두드리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분명 장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장난이다. 딸은 울면서 친구들과 선생님께 가서 말씀드렸고, 그 남자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사과하고 일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속상했지만, 그렇게 마무리되었다고 하는 일에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 없어서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딸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머리가 계속 아프다며 울고 있었다.
딸에게 일단 학교로 데리러 갈 테니 기다리라고 하고,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께 먼저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으니 선생님도 그때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고 딸과 친구들이 와서 한 얘기만 들어서 알고 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선생님께 그 남자아이의 부모님과 통화해서 이 일을 알리고, 딸이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할 경우 병원에 갈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전달해 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바로 조치를 취하셨고, 그 남자아이의 부모님은 나와 직접 통화하고 사과하고 싶어 했지만, 난 그 정도로 됐다고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안되고, 더구나 아이의 머리를 때리는 행위는 절대 장난이 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전달했다.
"다음에 또 걔가 머리를 때리지? 그럼 너도 주먹을 꽉 쥐고 그 녀석 머리를 사정없이 한 대 쳐 버려. 그리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해. 너 내가 한 번은 용서해 줬지? 한 번은 용서하는데 두 번 용서할 것 같아? 나도 손 있어. 나도 때릴 줄 알아. 나는 뭐 멍청이라 참고 있는 줄 알아? 한 번만 더 때리면 손으로 발로 닥치는 대로 때려 줄 테니까 단단히 각오해라."라고 말하는 거야. 맞고 있지만 말고~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이 말했다.
"왜 아이한테 그렇게까지 말을 해. 별일도 아닌 일에 그렇게 날 새울 것 없어. 아이들 학교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내 안에서 악마가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
"모르는 소리. 착하게 살면 누가 상 줘? 할 말은 하고, 한 대 맞으면 한 번은 참지. 두 번 참으면 그때부터는 바보라는 소리 듣는 다니까. 바보같이 왜 참아? 두 번 다시 건드리지 못하게 흠씬 패 주든가 해야지."
이럴 때 남편은 말이 없다. 그냥 기다려 주는 것이다. 결혼하고 신혼 초에는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늘 잔소리를 늘어놨던 남편이 결혼하고 10년 넘게 살다 보니 이제는 기다려준다. 내가 딸의 상황 속으로 지나치게 들어가 있음을 알고 그 안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불필요하게 감정을 앞세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을 아이 앞에서 드러내고 표현하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도. 하지만 어쩔 땐 내 안의 감정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폭발하듯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