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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나쌤 Feb 01. 2023

우리 엄마는 60이 넘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나정아, 엄마 글씨 좀 가르쳐 줘."


엄마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엄마의 친엄마는 엄마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는 세 번의 결혼을 하셨는데, 그중 둘째 부인에게서 엄마를 낳았다고 한다. 세 번째 부인(내가 외할머니라고 알고 있는 분이다)의 자녀들은 모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는데, 6명의 자식 중에 유일하게 엄마만 학교 근처에도 못 가봤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첫째 부인의 아들(큰 외삼촌)은 아들이라 학교를 보내줬고, 엄마를 제외하고 셋째 부인의 자식들 4명은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고 한다. 엄마는 셋째 부인의 자식들을 업어서 키웠다. 어쩌면 엄마는 그런 쓸모로도 학교를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글씨를 못 써도 좋으니까 글씨를 읽을 수 있게만 네가 좀 가르쳐줘봐. 똑똑한 우리 딸이 가르쳐주면 엄마가 진짜 열심히 배울게."




나는 엄마를 ㄱ, ㄴ, ㄷ.... ㅏ, ㅑ, ㅓ.... 한글의 기초부터 가르쳤다. 아마도 내가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참 이상했던 건 드라마를 좋아하는 엄마가 어떻게 글을 읽을 줄 모르나?였다. 우리 엄마는 문맹이었던 것이다.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듣고 말할 수는 있으나 읽고 쓸 줄을 몰랐다.




하지만 엄마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7,8세도 깨우치는 쉬운 단어도 엄마는 하루가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사춘기였던 나에게 그런 엄마를 꾸준히 가르칠 인내심은 없었다. 얼마 못 가서 엄마도 나도 시들해졌다. 엄마는 그때도 배우는 일보다는 먹고살기 바빴고, 나는 엄마의 배움에 대한 갈급함을 이해하기에는 철이 없었다.




그 후로 10년도 훨씬 지나 엄마는 공공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한글 교실을 수료했고, 제일 정보 중고등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수료했다. 엄마의 배움에 대한 갈급함은 나이와 상황을 초월할 만큼 강렬했다. 11개월 차이 나는 연년생 손주를 하나는 등에 업고, 또 하나는 앞으로 업고도 국어책을 읽었으며 손주들이 낮잠을 자는 짬을 이용해 돋보기를 쓰고 침침한 눈을 꿈뻑거리며 10칸 공책에 한글을 또박또박 적어 나갔다.




어버이날 딸이 쓴 편지를 엄마는 스스로 읽지 못했다. 딸이 읽어주어야 알 수 있었고, 손주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배움'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엄마에게는 열등감이자 평생소원이었다.


엄마에게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고, 사랑하는 이들 앞에 좀 더 당당해질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70이 넘은 엄마는 요즘도 매일 성경 필사를 하며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엄마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뜨겁게 응원한다.






엄마는 드라마를 참 좋아했어요.


그런데 읽고 쓰기를 할 줄 모르셨죠. 어떻게 드라마를 좋아하는 엄마가 읽고 쓰기를 할 줄 모르나 어린 저는 이해할 수 없었죠.




배우지 못해서 글씨를 읽고 쓰지 못했던 거예요.


먹고살기 바빴던 엄마는 60이 넘은 나이에 고령의 친구들과 함께 늦깎이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연년생 손주들을 돌보면서도 수업도 열심히 듣고, 숙제도 열심히 하셨어요. 졸업식날 손주들을 안고 기뻐하던 엄마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한 것 같아요.




몇 년 전 귀 수술을 하시면서 엄마는 세상의 소리와 단절되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죠. 그때 좌절했던 엄마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게 바로 핸드폰 문자와 카톡이었어요. 엄마가 글자를 배우지 않았다면 엄마는 정말 세상과 단절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딸과 손주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엄마는 글로 소통했어요. 힘든 시기를 그렇게 버텼습니다. 작년 10월 엄마는 귀 재수술을 했어요. 청력을 조금 회복해서 작은 소리는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마저도 너무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저 또한 너무 감사합니다.




삶에서 저에게 주어지는 것들과 제가 누리는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만 생각했습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라 감사함을 잃고 살았어요. 엄마의 삶은 저에게 보석처럼 귀한 교훈을 던져 줍니다.


'현재의 삶에 감사하라!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라! 나의 삶을 뜨겁게 사랑해라!'


여러분도 그러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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