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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나쌤 Feb 20. 2023

딸이 4개월 때 고관절 탈구 진단을 받았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잘 받아야 하는 이유


딸이 4개월 되던 해에 집 근처 소아과에서 영유아 건강 검진을 받았다. 아이를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펴보던 의사가 아이의 다리를 살펴보다 머리를 갸우뚱했다.



"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나와 남편에서 와서 보라고 했다.


"여기 아이의 다리 주름의 위치가 좀 다르죠? 고관절 탈구가 의심되는데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연년생을 낳았지만, 아들은 신생아 건강검진받을 때 별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고관절 탈구가 무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남편과 함께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 병원을 찾아갔고, 4개월 지난 딸은 여러 검사를 받고 고관절 탈구 진단을 받았다.



고관절 탈구는 다리의 시작 부분이 골반 안으로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밖으로 돌출되어 나오는 증상을 말한다. 하지만 다행히 신생아 때 그것을 발견하면 기저귀를 두껍게 채우거나 운동으로 치료가 된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안도했다. 아이의 상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운동 시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가 하늘을 보게 눕혀 놓고 아이의 무릎을 아래쪽으로 강한 힘으로 50회 이상 눌러줘야 했다. 성인도 고관절 쪽에 힘을 주면 통증이 느껴지는데 고작 4개월 된 아이가 뭘 안다고 그걸 내버려 두겠는가? 운동을 시키면 아이는 시작부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남편과 나는 이내 마음이 약해져서 운동을 독하게 시키지 못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몇 번 하다가 이내 포기해 버리기 일쑤였다. 나와 남편이 학원에 나간 동안에 친정 엄마가 아이들을 돌봐 주었는데, 친정 엄마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이가 울면 운동을 계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주에 한 번씩 광주 전남대 병원으로 정기 검진을 갔고, 처음 1,2개월 차에는 호전을 보이던 고관절 탈구가 4개월 차에는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딸이 8개월 차에 의사는 심각해진 얼굴로 나와 남편을 꾸짖었다.


"내가 그렇게 신경 쓰라고 얘기를 했건만, 왜 엄마 아빠가 아이를 이렇게 고생 시키나 모르겠네.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아이는 교정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당분간 아이는 절대 서거나 걸음마를 하면 안 됩니다. 고관절이 확실하게 교정이 되지 않은 상태로 걸음마를 시작하면 아이는 걷거나 뛰다가 자꾸 넘어질 거예요. 지금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아이는 앞으로 걷기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딸이었다. 선반이나 탁자를 잡고 서서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웃던 아이에게 앉은뱅이 자세의 교정기를 채워놔야 한다니...



의사에게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은


"엄마 아빠가 일을 키웠지. 애 아예 못 걷게 할 거야? 이제라도 제대로 치료해야지!"라는 말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왜 의사는 이렇게 심각한 일이 생길 거라고 말해 주지 않았을까. 최악의 상황에 대해 한 번이라도 언급해 주었다면 정말 이를 악물고라도 독하게 운동을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도 고통도 모두 우리의 몫이었다. 아이는 이제 보름 후에 제작되어 오는 교정기를 완치가 될 때까지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몸에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얼마후 의료기에서 아이의 교정기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학원에서 수업을 하다가 집으로 달려갔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파트를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그게 딸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급하게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의료기에서 오신 사장님이 아이를 돌보고 있는 엄마에게 교정기 착용 법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직접 딸에게 교정기를 착용해 주셨고, 한참 낯가림을 하던 딸은 낯선 아저씨가 억지로 교정기를 몸에 끼우자 몸부림을 치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것이다.



사장님은 나와 남편에게 교정기 착용법을 다시 설명해 주기 위해 딸에게 다시 교정기를 착용했다. 딸은 작은 몸에서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저항했고 울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얼굴은 빨갛다 못해 곧 터질 지경이 되었다.



"어허! 소용없어! 가만히 있어!"


의료기 사장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찔렀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약한 마음을 먹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엔 저 의료기 사장님이 하고 있는 힘겨루기를 나와 남편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사장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완력으로 딸을 제압하며 교정기를 능숙하게 착용했다. 딸은 애처로운 눈으로 안아달라며 나에게 두 손을 뻗었다. 내 품에 안겨 더 이상 울 힘도 없는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훌쩍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의 다리는 교정기 때문에 마치 개구리 다리 같은 형태를 계속 유지했다. 교정기 때문에 아이를 안는 게 불편했다. 내가 이 정도로 불편하면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는 얼마나 불편하고 힘이 들지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아이를 안고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3개월에서 4개월만 잘 버티고 밤마다 운동 잘해 주면 된다는 의사의 말도 모두 의심스러웠다. 평생 교정기를 하고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행히도 저희 딸은 그 후로 몇 개월 동안 교정기를 착용하고 운동 요법을 병행한 덕분으로 고관절 탈구가 완치되었습니다. 당시에 찍은 딸의 사진은 모두 교정기를 착용하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게 됩니다.



성장하면서 딸이 걷거나 뛰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남편과 저는 동시에 달려가 딸을 일으켜 세우며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다리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다리 길이를 재어 보았습니다.



아이가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한동안 마음속에 담고 살았습니다. 아이가 걷고 뛰는 일은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아이가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면 저 또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는 종종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 이후로 종종 기억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그 기억을 다시 한번 끄집어 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두 손을 모으고 제가 믿는 그분께 밤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큰 욕심내지 않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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