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트라우마 치료과정 인터뷰
복합외상환자가 치료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인터뷰 대상자는 지난 편과 같은 사람이지만 내용은 치료과정에 대해 초점을 맞춘 것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습니다.
상담자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단밤 안녕하세요? 단밤입니다. 저는 현재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CPTSD) 증상을 겪고 있으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담자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란 무엇인가요?
단밤 PTSD가 단발적으로 나타나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경험되는데 비해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COMPLEX PTSD)는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태로 그 트라우마가 지속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성장기에서 겪는 지속적인 트라우마가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미국진단통계편람 제4판(DSM-Ⅳ) 정식 진단 기준에 포함되지는 못했고 PTSD의 부수양상으로 기술되었습니다. (국제 진단기준에는 포함)
상담자 미국진단통계편람을 사용하는 국내 진단기준에도 없다면 단밤님께서도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진단을 받지는 못했겠군요?
단밤 네, 그렇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외상반응의 개념은 단기에 머무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에서 전형적인 단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거쳐 복합외상 희생자의 만성적인 증후군까지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복합외상 희생자를 기술하기에는 DSM-IV는 개념적 공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복합외상 희생자가 신체화 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해리장애 등 개별증상에 국한된 진단만을 받고 불완전하고 통합되지 못한 치료를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논문 1 참조)
상담자 그렇다면 단밤님은 어떤 진단을 받으셨나요?
단밤 저 또한 10대에 우울증 진단을 거쳐 20대에 경계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두로 PTSD와 신체화 장애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30대에 병원을 옮기고 치료에서 수년간 특성을 나타내는 부분이 보이지 않았고, 경계성 성격장애 진단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30대에 상세불명의 불안장애 진단이 있었던 것이 기억나고 현재 진단은 알지 못합니다.
상담자 그렇다면 이 진단들에 따라 치료를 받으신 것인가요?
단밤 20대에는 경계성 성격장애 증상에 맞추어 병원에서 레지던트와 함께 DBT(변증법적 행동치료)를 진행하기도 했었습니다. 개별증상에 국한된 진단으로 인한 단점은 그 진단에 해당되는 치료만 받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논문 1 참조)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30대까지 약 17년 동안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과거 대부분 치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상담자 치료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단밤 저는 불안과 신체화 증상들을 견디다 못해 10대에 처음 제 발로 상담센터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치료사에게도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해 불안을 호소했지만 필요로 하는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료사가 가정 내에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도록 보호자를 설득하여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시급했으나 그런 도움이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과 수치심에 시달리는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했었습니다.
또 당시 치료 장면에서 들었던 말들로 인해 심한 충격을 받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세상은 아무도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상담자 그렇군요. 어쩌면 그때 적절한 개입이 이뤄졌더라면 고통이 지속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요. 여기서 트라우마에 대한 자세한 질문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들이 치료에서 이뤄졌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단밤 10대에는 상담 장면 내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글 쓰는 것을 비교적 편하게 여겼기 때문에 상담자에게 메일(글)로만 현재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부분이 어떻게 원인이 되어 고통을 유발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알 수 없고 견디기 힘든 심각한 신체화 증상과 끝없는 불안의 고통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상담자 그랬군요. 그런 상황이 갇힌 것 같이 느껴지셨겠습니다. 신체화 증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단밤 다양한 증상들이 있었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들 중 하나는 견디기 어렵게 24시간 느껴지는 지속적인 불안과 함께 찾아오는 견디기 어려운 신체증상이었습니다. 10대~20대에 걸쳐 심각한 신체화 증상을 겪었습니다. 가슴에 칼을 박아 넣은 것 같이 심한 고통을 생생하게 느꼈고 걷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숨을 쉬기 힘들었고 수시로 구역질에 시달렸습니다. 종합건강검진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검사들을 했지만 아무런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상담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셨군요. 그 시간 동안 누구도 이 증상을 도울 수 없었나요?
단밤 네, 그렇습니다. 증상을 호소했지만 어떻게 해결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약을 먹으면서 매주 상담센터에 찾아가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CPTSD는 불안, 우울, 공포, 히스테리, 자살사고, 신체증상, 해리증상, 편집증 등 여러 다양한 혼합증상을 동시에 혹은 교대로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증상의 경과에 대한 통시적 고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재 증상과 외상 과거력 사이의 연결고리가 상실되어 기저 외상문제가 다루어지지 못하게 됩니다. (논문 1 참조)
상담자 20대에는 치료과정에서 변화가 있었나요?
단밤 20대부터 점차적으로 치료자들에게 반항적인 태도와 적대적인 태도를 갖추고 치료에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담 장면에 들어가서도 말을 하지 않기도 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거나, 일부러 상담자들을 당황시키는 질문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치료 중간에 갑자기 나가버린다던지, 계속해서 화를 낸다던지 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또한 동시에 계속해서 심한 불안감과 심각한 신체화 증상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호소했지만 그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상담자 그랬군요. 그랬을 때 치료자들의 반응들은 어땠나요?
단밤 제 반응에 당황하거나 제 태도와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없어하며 헤매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많은 시간 동안 ‘의미 없이 보이는’ 치료시간이 지속되다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치료자들은 제 치료를 어려운 케이스라고 말했고 몇몇은 심리치료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상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치료를 지속하셨군요.
단밤 네. 치료자들은 제가 왜 치료에 계속 오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이 ‘의미 없어 보이는’ 치료 시간에 저의 저항을 뚫고 들어와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는 치료자, 즉 저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상담자를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당시 저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를 신뢰하고 연약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상태를 알거나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방법을 몰랐던 저는 계속해서 저항적인 태도로 치료자들을 대하고 그러한 태도를 통해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시험했습니다.
상담자 그 과정에서 치료자들은 치료를 진행하지 못했고요?
단밤 네, 그렇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이런 표현 방식을 마주한 상담자들은 당황하고 치료를 포기하거나 원인을 알 수 없어 헤매었고 저는 그 과정에서 거듭되는 좌절과 상처 입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상담자 그 과정에서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는 좌절과 절망감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단밤 네, 그렇습니다. 나는 치료가 불가능한 구제불능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좌절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치료사들이 저의 드러나는 모습에 상처받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 부분을 캐치하여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면 하는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상담자 그렇다면 30대가 되어서는 변화가 있었나요?
단밤 20대 후반에 집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그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전보다 신체화 증상의 양상이 호전되었습니다. 20대 끝자락부터 상담 장면에서 적대감을 보이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보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30대에 접어들어 병원을 옮기고 나서는 급격한 감정의 변화도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치료에는 큰 진척이 없었습니다.
30대에 병원을 옮긴 뒤로 약 3년간 매주 병원에서 정신치료를 받았는데 상담 장면에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제가 겪는 불안과 신체증상에 대해 호소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설명하지 못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상담자 그랬군요. 그 상황이 계속 지속되었나요?
단밤 그렇게 30대에 한 병원에서 3년간 정신치료를 받다가 어떤 계기들로 인해 단약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을 옮기고 1년에 걸쳐 약을 줄이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17년 동안 지속적으로 복용했던 정신과 약들이었기에 급격한 금단증상을 비롯하여 심각한 상태에 이르기까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거쳐 올해에 이르러 단약에 성공하였습니다. 단약 후 몸이 회복되면서 약 3개월간 스트레스에 대한 감정적 고통은 심했지만 –전보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신체화 증상을 거의 느끼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며- 기능적으로는 잘 생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상담자 그랬군요. 단약으로 회복이 시작된 것인가요?
단밤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고통들은 다루어지지 않은 상태 그대로 제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들은 제 안에 잠자고 있었을 뿐이었고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되고 트리거들로 인해 자극되면서 다시 불안과 트라우마 관련 신체 증상들이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겪었던 신체증상과 불안증상 등이 트라우마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상담자 그렇군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치료를 진행하고 계신가요?
단밤 복합 외상 전문가를 찾아다녔지만 국내에 관련 기관이나 지지자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찾았던 몇 기관에서는 시스템 문제로 진입이 어려웠었던 경험을 하고 포기했습니다. 또 몇 기관들은 이미 20대에 치료를 실패했던 곳들이었습니다.
전보다 말로 표현하는 것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상담자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단밤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은 안전한 상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랜 기간 동안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상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장과정 동안 큰 트라우마가 유발된 시점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환경과 상태로 10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제 정신적인 증상들이 더더욱 악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큰 트라우마의 줄기는 어린 시절 제가 안전에 대해 보호자에게 불안감을 호소했지만 보호자는 제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상담자 이것이 치료 장면과 연결되는 것인가요?
단밤 네, 그렇습니다. 이것은 치료 장면과 치료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며 제가 치료자들과 관계를 맺는데 고통을 겪는 부분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치료자와의 관계 혹은 안전에서 불안을 느끼고 그것에 대한 호소를 했음에도 치료자가 무관심하거나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이것을 위협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어린 시절 겪은 고통스러운 상황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치료를 포기하려고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치료자에 의해 치료가 포기되거나 제가 치료를 포기하면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공포감이 심해지고요. 지금도 이 문제로 씨름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상담자 그렇군요. 그것이 앞으로 단밤님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가 되겠네요.
단밤 네, 그렇습니다. 제 목표는 현재 이런 통찰과 자각들을 바탕으로 치료자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료자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제 감정과 트라우마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화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상담자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CPTSD) 개념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통합적인 접근과 치료를 통해 고통받고 있는 복합 트라우마 경험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치료에 접근이 어렵거나 저항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 좀 더 세심한 접근이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같이 증상이 광범위한 진단에 걸쳐 나타나는 경우 한 가지 진단으로 치료를 진행할 때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복합외상 환자들은 외상사건과 현재의 고통을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외상치료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느끼고 인정한 뒤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치심 등 여러 원인들로 인해 자신의 감정조차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큰 어려움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복합외상 환자를 위한 신체기반치료(SP, SE), EMDR, 트라우마 요가 등의 치료법들이 나와 있지만 이러한 다양한 치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뢰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라면 치료자를 안전하게 느끼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이러한 치료방법에 적용할 수 있는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기까지도 굉장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치료자는 치료가 어려워 보이는 환자를 판단하고 포기하기보다 치료의 어려움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보고 그 너머를 들여다보며 도움을 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담자는 자신의 연약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조문헌
논문 1) 복합외상과 극단적 스트레스 장애 (5권 2호 80-8)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학교실, 정신건강연구소 박 선 철·김 석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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