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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로 Sep 09. 2023

알고 있는 게 나를 가둔다

일상에서 수시로 맞닥뜨리는 지레짐작

어 그건 맛없는데...., 그거 만지지 마.... 등은 매일같이 만나는 말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표현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내용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경험한 것을 미리 경고하여 안전을 보장하거나 혹은 실패를 줄이는 것이다. 당연하고 좋은 충고이지만 간혹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려는데 못하게 막거나, 그쪽으로 갈 뿐 다른 용무로 움직이는데 미리 짐작으로 엉뚱하게 말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자잘한 충돌이 하루 기분을 잡치거나 심하면 서로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간섭 받는 쪽은 호기심이나 창의력을 제제받는다.


둘째 손자가 한살이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해서 뒤뚱뒤뚱하며 걷는데, 금세 뛰는데 재미를 붙였다. 손을 잡고 뛰면 좋겠는데 한쪽 팔만 휘두르니 답답해서 그런지 자꾸 내 손을 뿌리치고 달린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넘어지면 잡아줄 요량으로 같이 뛰는데 허리도 아프고 동작도 둔해서 정말 넘어지면 잡을 수 있을까 의심된다. 아들 키울 때는 멋모르고 뛰지 마라고 하거나 한 손을 놓지 마라고 야단을 쳤었다. 다치는 것도 염려스럽고 뛰는 게 넘어질 위험이 있다는 걸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지내고 보니 뛰면서 자랐고, 결국 이마며 볼이며 무릎이 깨지고 터질 수밖에 없었고 때론 야단치며 때론 같이 울며 약을 바르거나 병원으로 데려갔었다.

손주는 안 치면 좋겠고 아들처럼 똑같이 다치게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강력히 뛰지 마라고 제제하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가두는 게 손주를 위하는 걸까?


요즘 골프가 좋아서 유튜브도 보고 레슨 방송도 자주 접하고 있다. 얼마 전에 시원시원한 말솜씨와 외모로 마음을 끄는 김하늘 선수가 동반자에게 충고하는 걸 봤다. 폼을 바꾸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조금 과도하게 시도해야 하고, 프로들은 천 번 정도 연습해야 한단다. 과도해서 어색해 보이고, 쉽게 바뀌지 않아서 하염없이 연습을 반복하는 누군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든 초보 골퍼든 숙련되기까지 지켜보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안아서 달래주고, 다시 도전하도록 용기를 줘야 할 것이다. 흔한 얘기인 거 같은데 매사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지레짐작으로 또는 아는 만큼 대상이나 스스로 가둔다. 잔소리는 좋게 보면 사랑이고 나쁘게 보면 도전이나 창의성을 제제하는 것이다.


요즘 연필과 스케치를 배우고 있는데 선생님의 손길은 마술 같다. "여기 이렇게 나무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이쪽이 조금 어둡고..." 하면서 슥슥 몇 번 연필질 하면 금세 나무 가득한 숲이 펼쳐진다. 그런데 가만히 그려놓은 걸 보면 연필이 지나간 자리보다 빈 여백이 많고, 그 여백은 때론 빛이 반사되어 밝게 빛나는 곳이고, 어떤 곳은 넓게 펼쳐진 들녘 위의 하늘이다. 칠해서 표현한 거보다 비워서 표현한 부분이 더 밝고 더 넓다니 말이 안 된다 싶다. 어쩌면 세상일은 인공적 개입보다는 이렇듯 자연상태로 가만히 두는 게 좋다는 가르침인 거 같다. 미리 앞서서 말린다고 꼭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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