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끔은 늦었다 생각하며 일찍 깨고 있다.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네시 근처이다. 말라버린 손바닥 덕분에 단번에 핸드폰을 잡지 못하고, 우당탕탕 하며 떨어진 폰을 들 때는 옆에 곤히 자고 있는 아내한테 엄청 미안하다.
처음에는 새벽 네시 이전에 일찍 깬 것도 하루 보낼 생각을 하면 졸리고 집중력 떨어질까 봐 불편했고, 뻑쩍지근한 몸 그리고 핸드폰을 놓치는 마른 손에 대한 원망이 컸었다. 몇 차례 반복이 되면서 나름 자기 합리화 방안을 찾았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관절에 윤활 기능이 떨어지고, 근육들이 약해서 누워 있어도 힘든 부위가 있다. 그래서 뒤척여도 신음 소리가 절로 나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얼굴을 찡그리며 속으로 꺼이꺼이하며 팔을 짚고 상체를 돌리면 자석처럼 침대에 붙어있던 묵직한 엉덩이가 들어 올려진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다한증을 의심할 정도로 손바닥이 촉촉했었지만 이제는 밤새 바짝 마른 손바닥 탓에 바로 미끄런 것들을 집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손은 나이를 속이기 어렵다. 손이 다른 신체 부위보다 얇은 피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젤 먼저 혈관이 등산로에 뻗쳐있는 소나무 뿌리처럼 도드라진다. 이것은 나이가 들면서 지방이 줄어들어 가려져 있던 혈관이 노출되어 발생되는 것이다. 다음은 잔주름이다. 핏줄처럼 지방이 줄어들어 감춰주지 못하는 데다가 자외선에 노출된 세월 탓에 콜라겐 조직이 파괴되어 얇아지고 탄력을 잃으면서 주름이 두드러진다.
또, 피부 고유의 지질층이 소실되어 피부 각질층의 수분 저장이 감소하고, 얇아진 표피를 통한 수분 소실이 증가하고, 피부 보호막도 파괴되는 등으로 손 건조증이 발생한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며 발생하는 당연한 현상들을 알아보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화를 더 촉진하기 때문에 개선은 안되고 개악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실망과 소심한 좌절 그리고 미안함까지 온통 부정어 투성인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지만 퇴직하며 꾸준히 습관을 들여놓은 커피 드립과 독서가 거실까지 나오기만 하면 확! 기분전환을 시켜준다.
시원한 배출로 상쾌한 아침을 예감하며 부엌으로 가서 커피포트에 물을 채우고 전원을 켜면 찬장을 열려는 손길과 함께 벌써 물 끓는 소리가 난다. 기다림에 서툰 사람들에게 딱 좋은 금방 끓는 커피포트 덕분에 한층 마음이 편해지고, 드리퍼와 필터 그리고 갈아놓은 커피통을 꺼내는 손길은 이미 아침을 반가워하고 있다.
따로 유리 서버를 쓰지 않고, 바로 마실 수 있는 컵에다 드립을 하기로 했다. 시원하게 마시기 위해 냉장고에 넣어 둘 아이스아메리카노 잔 크기의 컵에 먼저 내려 식히고, 아침 루틴과 함께 할 커피 잔에 두 번째 내리면 부드럽고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오늘은 특별히 한잔 더 준비해서 커피를 안 마시는 아내를 위해 오차물 혹은 커피가 장화 신고 지나간 물처럼 한잔 더 내린다.
준비가 다 되었고, 이쯤 되면 나는 아침과 많이 친해져 있다. 커피 향으로 가득해진 거실의 밀도 높은 공기를 헤집고 책상으로 향하는 몇 걸음은 행복 1, 행복 2, 행복 3... 하며 걷는 듯하다. 거실이 좀 더 컸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오늘은 선물 받은 '글쓰기의 전략'을 다 읽고 싶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열심히 저의 글쓰기를 응원해 주시는 동료한테 감사인사로 보답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피가 위를 쓸어내리고 이뇨작용이 뛰어나다는 얘기가 있어 몸속 양분도 보호하고, 빈속을 달래려고 늘 함께 먹는 달달하거나 탄수화물 덩어리 간식을 준비해서 자리에 앉는다.
가을의 문턱에서 아침을 이렇게 책이 펼쳐진 책상과 함께 맞이하면 독서의 계절에 걸맞다는 생각도 들고, 깔끔하고 구수한 향을 안겨주는 커피와 마음을 부드럽게 해 준다는 단맛이 더해지면 절로 '아침과 커피 그리고 행복'에 푹 빠진다.
나이와 함께 찾아온 아침의 변화에 순응하기보다는 현상을 이해하고 스트레칭, 달리기 그리고 스쿼트로 근육을 키우고 관절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아침운동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해서 기분을 좋게 한다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손이 마르는 건 부지런히 핸드크림으로 수분을 보충하는 습관을 키우면서 콜라겐 섭취를 늘리려는데 맘같이 잘 안되고 있다. 핏줄을 감추기 위해 지방층을 늘이면 좋겠지만 엉뚱한 내장지방이 먼저 문제를 일으키므로 감추려고 하기보다는 피부가 거칠지 않게 유지하여 늙은 게 아니고 잘 익은 모습이 되도록 해야겠다.
오늘도 여전히 생각했던 책 읽기보다는 먼저 넘치는 행복감에 절로 글 쓰는 시간으로 벌써 일곱 시가 되었지만 이런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 감사한다.
참고 1) 네이버포스트: 손, 나이를 말하다(시그니처매거진, 2018.12.18)
참고 2) 이데일리: 겨울철, 주름지고 거칠어진 손,,, 이렇게 관리하세요(2023.9.2. 이순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