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지향형 인간에서 자본주의형 인간으로
마음도 성형 가능할까요. 큰 일에는 대체로 결단력이 있지만, 소소한 일에는 우유부단합니다. 퇴사를 결심하면 바로 사직서를 쓰지만, 회사에서 신는 만 원짜리 슬리퍼를 살 땐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서성이고, 쿠팡에도 들락날락하다가 전날 들른 매장에 가서 사는 겁니다. 신중하다면 신중하고, 망설이는 거죠. 제 인생의 대부분은 '비영리'로 점철돼 있었습니다. '돈'은 나와 무관한 존재라고요. 돈을 버는 노동자이지만, 돈을 '많이 버는 노동자'이길 포기했달까요.
저는 평균에 속하려고 안간힘 쓰는 인간입니다. "너만의 인생을 살아." 많이 들은 말이고, 저도 자주 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내뱉은 적이 있어요. "나는 남들이 깨닫거나 무언가를 하는 걸 10년 정도 늦게 하는 것 같아." 그때 깨달았어요. 나는 나만의 속도와 방향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 같지만, 남들이 타는 고속도로를 타고 싶어 한다는 걸요. 남들과 다르고 싶지만, 정말 다르고 싶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러한 성향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기간 걸린 셈입니다.
평균에 속하려고 안달하다가 평균을 넘어서고자 마음을 먹었어요. '자본주의 인간'으로 거듭나자고요. 퇴사를 결심한 결단처럼 제게는 꽤 큰 변화입니다. 제 인생의 가치와 방향을 바꾸는 일이니까요. 새로운 곳을 향해 걷고 싶은데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새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느낌 아실까요. 요즘 제가 그렇습니다. 다시 평균으로 살고 싶더라고요. 이것도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삶인데, 왜 만족하지 않느냐고. 소심한 반항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오늘 박스에 처박아둔 책들을 정리를 했어요. 저는 주로 문학과 글쓰기, 인문, 철학 종류의 서적을 사서 모으는 편이었는데 박스를 열어보니 '자기 계발서'도 꽤 많더라고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자기 계발서는 들끓어 오르는 마음에 장작불을 지피는 불씨이기도 했지만, 아까운 나무만 애 먼 죽음을 맞이하게 한 이야기도 있었어요. 변화를 원한다면 전자에 힘을 실어야 하는데, 40년 가까운 '비영리적 마음'을 움직이기란 누군가의 죽음을 묻어둔 고인돌을 밀어내는 심경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숨은 마음을 살펴보니까요. '자기 계발서'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긍정'이 저한테 찾아볼 수 없는 단어였더라고요. 요즘 '마인드셋'이라는 말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미라클모닝, 모닝리추얼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이라도 정리해라'는 얘기도 있고요.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는 결국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와 연결되잖아요. 저는 그 마인드셋을 바꾸는 데 부대낌을 느끼고 있습니다. '돈 벌고 싶은 것'과 '마인드셋'은 다른 영역 아냐?라는 생각이 피어오는데요. 한편으론 알겠어요.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먼저 해낸 사람은 있으니까 겸손해야 한다는 걸요. 오늘도 저는 제 마음을 이리저리 주물러 보려고 합니다.
한결같은 사람도 멋지지만, 물렁한 사람 한 명 있어도 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