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글쓰기에서 '돈 버는' 글쓰기를 해볼까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글쓰기 강좌를 섭렵했습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몇 십만 원씩 썼죠. 저는 이른바 '프로 수강러'였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믿음을 충만했지만, 제 행동력은 참 얕았거든요. 그래서 돈의 힘을 좀 빌렸습니다. 다행히 꾸미거나 물건을 사는 데 흥미가 덜한 편이라 부담스러운 수강비는 잠깐 질끈 눈 감으면 쓸 수 있었습니다.
에세이, 소설, 영상 등 글쓰기 관련해서 장르 불문하고 많이 들었는데요. '프로 수강러' 초창기(?)에는 순문학을 향한 동경이 있어 단편소설 기초, 심화반 등 열심히 들었어요. 나중에 몇 년이 흘러서 또 단편소설 습작반을 전전합니다. 출퇴근하는 버스에서 글감 찾고, 구상하고. 그런 행위를 하는 제 모습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 그때 쓴 소설을 읽으면 오그라듭니다. 비대한 자아 때문에 이야기는 텅 비어있더라고요.
몇 번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이내 낙방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포기했습니다. 소설 읽기를 좋아했고, 사실 소설가가 풍기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던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합리화인가요?) 참 어리숙한 생각인데 정말 그랬어요. 작가의 치열함을 애써 외면했달까요. 무엇보다 제가 쓰고 싶은 '알맹이'에 관한 고민은 참 없었습니다. 그러니 텅 빈 이야기만 남았던 게 아니었을까요.
순문학, 에세이 글쓰기 강의 전전하다가 드라마 쓴다고?!
이후 저는 드라마 작가에도 도전합니다. 교육원을 1년 반 가까이 다녔고요. 기초반, 연수반, 전문반, 창작반. 이렇게 퀘스트 깨듯이 상급반으로 올라가야 하는데요.(필수 아닙니다. 절대. 기초반 다니다가 공모 당선된 분들, 교육원 다니지 않고 바로 당선된 분들 여럿입니다.) 저는 역시 '프로수강러'이기에 퇴근 후 열심히 다녔어요. 교육원 첫날 노희경 작가의 홍보 영상을 틀어줬는데요. 그때 마음먹었어요. "우선 나는 창작반까지 올라간다." (ㅋㅋ) 운 좋게도 퀘스트를 깨며 창작반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만, 공모는 매번 낙방했습니다. 하하.
다시 제가 쓴 드라마를 보면 '소재'는 괜찮은데 '이야기 구성'이 부족합니다.(지극히 주관적 의견) 그런데 말입니다. 소재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어요.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 없듯 소재도 발굴하긴 쉽습니다. 다만 소재를 새롭게 재해석해 대중에게 보이는 일은 정말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더불어 단막극을 써내도, 쉽사리 미니시리즈에는 도전하기 어려웠습니다.
창작반 다닐 당시 우연히 PD분과 미니시리즈 작업을 맛본 적 있어요. 계약은 아니고, 몇 차례 제가 미니를 구상해서 제출하면, 피드백 주는 방식이었죠. 아마 제가 계약해도 될만한 소스를 갖고 있는지 테스트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요. 나름 집중한다고 주말에 호텔 숙박을 잡아서 글 쓴 적이 있었어요. 근데 참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마음은 급한데, 손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죠. 몇 번의 기획회의 끝에 까였어요. 돌아서서 집에 오는데 얼마나 착잡하던지. 노력과는 별개로 마음의 스산함은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요.
다른 글쓰기도 해보려고요. 헤매는 중이거든요.
거의 '프로 수강러'로 산 지 10여 년 만에 글쓰기를 관뒀습니다. 지금 쓰는 것도 글이지만, "나는 작가가 될 거야."라는 마음을 버렸다는 게 정확합니다. 어느 순간 글보다 '작가'라는 그럴듯한(사실 그럴듯함보다 고됨이 전부이지만) 지위에 매달렸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 거 있잖아요. 우아한 백조이고 싶은 허상. 이렇게 마음먹은 건 제 생활의 구성이 급격하게 바뀐 탓도 있습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빚도 생겼거든요.(!!)
여전히 글에 대한 애정은 남아있습니다. 다만 요즘 저는 재테크할 수 있는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어요. 무슨 돈이 넘쳐나는 것도 아닌데 돈 버는 행위를 나와는 무관한 거라고 여기고 평생 살아왔습니다. 이 방향을 바꿔보려고요. (욕망의 화신이 될까요?!) 현재 감사하게도 소수 매체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고, 블로그와 애드센스에 도전 중입니다. 이 분야도 역시 만만치 않군요. 이제까지 글쓰기와는 완전 딴판입니다.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네요. 돈만 쓰다가 돈 버는 글쓰기를 골똘히 고민하다가 뭔가 마음에 차오르고, 쓰고 싶어서 써봤습니다. 아마 이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