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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엘리 Mar 18. 2024

가운뎃손가락

손가락이  닮았네....

나이가 들면서 내 손이 둔해졌나 보다.  핸드폰에 타입 치는 건 남부럽지 않은 도사였는데, 그전과 똑같이 타입을 치는데도 완전히 오타로 도배를 해 당황한 나머지 정신을 혼미해질 지경이다.  거기에 더해서 류머티즘성 관절염이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으로 왔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는 유전적,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 신체적 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은 후 발병하기 쉽다고 알려져 있다.  폐경 초기에도 발병률이 높다고 하는데….  어느새 내 나이가 그리되었다.



정말 아프다.  나 스스로 참을성이 많다고 자부하고 살았건만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 새로운 아픔에 적응하는데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구부려지지도 않고 굵어만 지는 손가락을 보고 있자니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의 열 손가락은 엄마 덩치에 맞지 않게 마치 살색 털장갑을 여러 겹 낀 것처럼 굵고 넓적했다. 그래서 엄마의 반지나 팔찌는 나에게 항상 거대한 거인의 것이었다.  그 굵은 손가락으로 작고 가는 바늘을 잡아 장난꾸러기 우리들의 구멍 난 옷들을 척척 꿰매 주었고, 나이에 맞지 않게 일찍 나기 시작한 내 머리의 새치를 ‘한 개 뽑으면 두 개가 더 난다.’ 걱정하며 수도 없이 뽑아 주었다.  간식으로 구운 뜨거운 고구마 껍질도 덥석덥석 잡아 벗겨주고, 한겨울에도 맨손 마다하지 않고 어린 우리들을 위해 눈사람을 만들어 주셨다.  



어느 순간 내 손가락이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굵은 손가락에 반지들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더 작은 손가락으로 쫓겨난다. 그리고 거인의 것이 었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반지들이 내 손가락에 편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엄마는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내 기억엔 엄마가 한 번도 우리에게 아프다 힘들다 내색한 것을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내 기억에 없다.  엄마가 맹장 수술로 병원에 입원 해 계실 때도 아픈 엄마보단 침대 옆에 있는 간식거리들이 나의 관심사였다. 철없이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는 엄마를 부러워하며 차마 먹고 싶다는 말은 못 하고 그것에 눈을 떼지 못했다.



뒤늦게 자삭들이 철이 들어 당신을 위해 사실 때가 오자 암이 엄마에게 왔다.  또 다른 도전이 67세의 엄마에게 온 것이다. 엄마는 봄,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듯 그 흐름을 온전히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지나기 위해 모든 허물을 벗어버리는 자작나무처럼 엄마도 모든 집착과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시고 오직 당신만을 위한 침묵의 세계로 가셨다.  이 세상에 없는 엄마를 생각하면 자식이면 누구나 하는 불효에 대한 아쉬움과 평안한 곳에 계실 것에 대한 안도감이 함께한다. 그리고 나 또한 보아오고 자란 게 그런지라 그렇기도 하고 내 보기에 괜찮을 것 같은데 아프다 하는 사람들이 나에겐 늘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앞으로의 삶도 이 아픈 손가락처럼 내 엄마를 닮아 꿋꿋하게 잘 견디어 줬으면 좋겠다.


그림 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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