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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Jun 03. 2023

M, Unterstützen Sie Ihr Leben

M, 네 삶을 응원해

2016년 병신년의 마지막 날 서울 종각역은 새해를 맞이할 준비에 분주했다. 분주함 속 한가운데에서 나의 후배들은 신년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한해의 마지막 날에도 6시간 동안 백화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다가 종각역으로 달려갔다. 3년 만에 대학 풍물패 연간 행사인 신년굿을 찾은 나는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후배들이 공연복을 갈아입으며 공연 준비를 하는 동안 사진을 찍으며 종각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2016년이 세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저기 누나. 제가 색띠 묶는 법을 몰라서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학업에 지쳐 동아리를 자주 찾았던 2016년 하반기, M은 오며 가며 얼굴만 익힌 다른 패 후배였다. M에 대해서는 동기들로부터 '우리 패에 새로 들어온 친구가 있는데 되게 어리다!'라고 전해 들은 게 전부였다. 우린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그저 얼굴과 학번, 이름 정도였지만 색띠 정도야 얼마든지 묶어줄 수 있었다.

"허리 많이 안 조이지? 이 정도면 숨 쉬어지지?"

마지막으로 파란 허리띠를 조여주며 물었다.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누나"


신나게 신년굿 행사를 마치고 회기동으로 돌아와 2017년 첫 술을 마셨다. 그때 M은 사실 누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색띠를 묶어달라고 부탁한 거라 했다. 그렇게 나와 M은 2017년 1월 1일부터 친하게 지내자고 약속했다. 술에 꽤나 취해있는 상태였는데도 우리 둘은 그 약속을 잘 지켰다. M과 본격적으로 농담을 주고받고 장난을 치는 사이가 되었고, 나는 그 해 겨울전수 후기에 'M은 애교가 참 많은 후배'라고 남겼다.




M과 가까워지고 난 후 학교를 같이 다닌 시기는 길지 않았다. 나는 2017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대학을 졸업할 예정이었다. 학교에서의 추억은 길게 쌓지는 못했지만 다른 후배들 못지않게 M과 부쩍 가까워졌다. 졸업을 앞둔 여름, M은 자신의 동기Y와 함께 나를 보러 일산에 왔다. 그날도 여전히 나는 백화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고 퇴근 후 M, Y와 웨스턴돔 근처 어느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우연히 나의 고등학교 친구I는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린 치킨과 생맥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곧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짧은 중국 유학을 떠나는 나에게 M과 Y는 응원을 해줬다. 신나게 셋이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I는 몰래 생맥주를 리필해주곤 했다. 우린 그날 각자가 가진 아팠던 이야기도 처음으로 나누며 서로가 서로에게 약한 모습을 조금씩 보여줬다. 그날 딱 느꼈다. M 앞에선 어떤 모습이든 보여줘도 괜찮다는 걸.


졸업 이후에 가끔 찾은 동아리 행사에서 M을 종종 마주쳤고, 우린 학교 밖에서도 가늘고 길게 인연을 이어왔다. M이 석사과정을 위해 프랑스 유학을 앞두고 있을 때 다시 M, Y와 함께 명동의 어느 훠궈집을 찾았다. 그날 난 M과 Y에게 다음날 온종일 배앓이를 하게 될 매운 훠궈를 사줬다. 'M이 유럽으로 가게 되면 지금처럼 자주 보고 연락할 수 없겠지?' 인연이 이 정도에서 멈출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서로의 비슷한 점을 더 많이 발견했다. 미드 How I Met Your Mother를 좋아하고, 밥을 직접 차려 먹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러닝, 볼더링 클라이밍, 그리고 글쓰기까지. 한국을 떠나기 전 서로의 공통점을 더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닮은 점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M이 해외로 떠난 이후로 우린 알게 모르게 비슷한 모양과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M은 프랑스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해외생활은 길어져만 갔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왔는데 늘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줬다. 가끔 M의 동기 Y 혹은 J와 함께 홍대의 어느 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한 잔 하며 저마다의 고민을 나눴다. M의 해외생활부터 나의 일터 이야기까지. M과 나눌 수 있는 '지금'의 이야깃거리가 점점 늘어갔다. 2017년의 여름 밤, 일산의 한 치킨집에서 나눴던 진지한 대화의 장면에서 시간과 풍경만 바뀌었을 뿐, 계속해서 자신과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눌 기회들이 찾아왔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M을 보려면 매년 가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왜 결이 맞고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은 나와 먼 곳에 있냐며, M의 해외생활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며 시간을 하염없이 탓했다.




올해 상반기는 쉽지 않았다. 몸은 자주 아팠고, 많은 일들이 내 기대와 반대방향으로 흘렀다. 특히나 5월에는 아무에게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약한 모습들을 숨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 M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도 가을에 오는 거 아니었어?"

"J형 결혼식도 있고, 휴가도 얼른 소진해야 해서 겸사겸사 들어왔죠"

M의 내한 소식은 마치 누군가 꾸며 놓은 장난 같았다.

'쉽지 않은 시기가 될 거야. 그 대신 M을 보내줄게. 이 시간을 잘 견뎌보렴.'


봄의 끝무렵과 여름의 초입 사이였던 부처님오신날, 굵은 빗방울 속 발을 적셔가며 M과 북촌에서 만났다. 반년만이었다. 지난가을 먹지 못한 스프카레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M을 만나기 전 '아, 최근에 있었던 마음 아픈 일들 전부 M한테 얘기하고 싶어! 혹시나 눈물이 난다면 M 앞이니까 울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M을 보니 정작 나는 눈물을 쏟기보단 덤덤하고 조곤조곤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M과 함께하니 어두웠던 마음 속 불이 하나 둘 다시 켜지기 시작했다. 그날 선물 받은 M이 쓴 에세이집을 읽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M이 써내려 간 글 속엔 내가 보지 못했던 M의 시간들이, 풍경들이 그려져 있었다. 글 속에서 나와 M의 또 다른 공통점을 발견했다. 내향적인 나와 달리 M은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이지만 우리 둘 다 인간관계에 진심이라 고민이 많다는 것.


비가 많이 왔던 그날 북촌의 어느 한옥카페에서 M이 나에게 남긴 말이 있다.

"누나, 아무리 포기하고 싶은 관계라도 마지막 하트 딱 하나만 남겨 놓는 게 어떨까요"


나는 가끔 M이 몇 살인지 잊곤 한다. 뛰어난 공감능력과 감수성, 그리고 섬세함.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까지. 동갑인 친구나 선배들과 달리 M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이 있다. M은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되는 후배다. 남은 시간들 속에서 내가 M과 무엇을 더 공유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린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잔뜩 남아있다.(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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