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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Mar 31. 2023

G의 인생상담소

온탕과 냉탕 사이, 동료G

"현장의 소상공인들과 소통하기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설득하실 건가요?"


 G와 나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소상공인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PM 자리를 두고 면접 경쟁자로 만났다. 누가 면접관인지 모를 정도로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던 면접장에서 우린 각자의 톤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질문들에 답을 해나갔다. 면접이 끝났을 땐 나는 G와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이고, 내일 채용결과에는 '적격자 없음'이 뜰 것이라 생각했다. 면접관들의 표정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예상치 못한 합격 통보를 받았고 정확히 한 달 반 후, 다른 부서에 G가 신규 입사자로 들어왔다.


'설마 그때 같이 면접 본 그 사람?'


면접장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란히 앉아있다가 인사도 없이 스쳐가 버린 그 인연을 동료로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때 면접장에서 만난 사람은 당신의 일자리를 뺏으러 온 경쟁자가 아니라, 향후 2년 간 당신의 옆자리를 든든하게 채워줄 동료가 될 사람이라는 걸, 이 기가 막힌 인연을 신도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G와 나는 약 2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첫 해에 G는 뜨겁게 나는 차갑게, 두 번째 해에 G는 차갑게, 그리고 나는 뜨겁게 보냈다. 마치 미지근한 조직의 온도를 유지하려면 나와 G는 절대로 같은 탕에 있어선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린 그렇게 번갈아가며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입사 첫 해에 G는 노동자위원 대표였다. 그 해 나는 매서운 한파 속에서 조직생활을 하며 사회의 쓴 맛을 제대로 경험했고 자주 G를 찾았다. 내가 맡고 있는 사업이 이상하다고. 이 조직이 이 사업을 하는 게 맞냐고. 조직이 참 이해가 안 된다고. 원래 조직운영을 이런 식으로 하냐고. 상급자와의 소통이 힘들다고. 모두가 불합리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거 아니냐고.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G에게 나의 어려움을 성토할 때마다 새하얗던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나의 눈, 코, 입은 압력밥솥처럼 김을 계속 뿜어내고 있었다. 그 해 G는 내 모습이 마치 새 같다고 했다. 빨갛고 화가 난 얼굴. 앵그리 버드.


 조직생활 두 번째 해는 마치 계절이 바뀐 것 같았다. 유능한 상사, 성취감 있는 사업, 익숙해진 업무, 친해진 동료들까지. 나의 조직생활에도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왔다. 그 해부터 나는 G와 더 가깝게 지냈다. G는 부서 상황과 담당 사업의 어려움을 공유하며 함께 밥을 먹었고, 가족의 상을 치르고 돌아온 나에게 따듯한 차를 대접하며 대학 시절 조부모를 떠나보냈을 때의 상실을 나눴다. 나는 종종 술잔을 기울이며 G에게 소박한 꿈과 목표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G는 나의 일상에 많은 온기를 심어놓았다.


 반면, 그 해 G의 계절은 늘 쌀쌀했다. 부서, 팀, 사업의 애로사항 등 G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왕왕 발생하며 폭풍우 같은 일상에 휘말리고 있었다. 첫 해에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던 나를 달래주던 G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때 날이 서 있는 G의 모습을 처음 보았고, 온화하게 나의 고충을 들어주던 G도 날카롭게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 G는 이럴 때 힘들구나. G는 싫음을 표정에서 감추기 어려워하는 사람이구나.


 G와 나 모두 조직에서의 고충 경험이 쌓이며 이야기의 공감대는 높아져갔다. 밥, 차, 술 그 이상이 필요했다. 우린 아침 시간을 찾았다. 유연근무제로 같은 8시 출근자인 G와 나는 종종 아침을 먹는 시간을 가졌다. G는 라면을 무척 좋아했는데, 몸에 좋지 않으니 아내가 먹지 말라고 할 정도로 많이 먹었다. G는 종종 다른 동료들과 같이 먹을 수 있도록 라면을 박스채로 가져와 사무실 한켠을 채워두곤 했다. 우린 전날 술을 마셔서 해장을 해야 한다고, 혹은 아침을 거르고 왔다고 구실을 만들어 1천 원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컵라면을 들고 아침마다 회의실에 앉았다. 빨간색의 작은 라면을 한 컵, 두 컵 비울 때마다 G에 대한 신뢰와 일상 속 비중이 높아져만 갔다. 어느 날 동료 진은 도대체 아침마다 무슨 모임을 하냐며, 면사랑동호회라도 운영하냐며 우릴 신기해했다. 나는 인생의 고민이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그 고민들을 들고 G를 찾았다. 회의실 책상 위에 고민을 꺼내 놓고 우린 함께 라면을 비웠다.


 조직을 떠나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눈에 밟히는 동료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지난 한 해 추운 겨울 속에 있던 G는 늘 나의 눈에 밟히는 동료였다. 다행히도 나는 퇴사 전 G가 활짝 웃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G와 G의 단짝 H와 틈만 나면 티타임을 가졌다. 각자 단 맛이 가득한 시그니처 초콜릿을 한 잔씩 앞에 두고 고민과 농담들을 늘어놓았다. 앞으로 G 없이 어떻게 매일 누구와 농담하며 웃을지, 그 허전함이 얼마나 클지 상상도 못한 채 우린 눈만 마주치면 서로를 먼저 웃기려고 머리를 굴렸다.


 나는 퇴사 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짱구는 못 말려>의 오랜 팬인 나를 위해 G는 짱구 여권케이스와 슬리퍼, 그리고 부서원들과 돈을 모아 엔화를 선물로 주었다. G는 나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쇼핑몰을 뒤져 슬리퍼를 찾아냈고, 처음으로 오픈시간에 맞춰 은행에 달려갔다고 했다. 나는 G의 마음을 가득 싣고 일본에 갔다. 그곳에서 중국 유학 시절 만난 일본 친구이자 여행메이트인 푸카에게 G의 이야기를, G에게 받은 선물과 마음들을 어린아이처럼 재잘재잘 얘기하며 자랑했다. 푸카는 한 번도 G를 만난 적이 없지만 신나게 G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에게 참 좋은 동료를 만난 것 같다며 미소를 지어줬다.


'분명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매일 행복할 거야.'


 마냥 밝을 것 같은 미래가 불쑥 다가왔지만 그 시간 속에도 나름의 고민, 번뇌, 스트레스가 있었다. 퇴사를 하고 예상치 못하게 나는 제대로 길을 잃었다.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게 맞나?'라는 물음이 들었고, 나는 어김없이 G를 찾았다. G와 나는 지난 2년 간 서로의 뜨겁고 차가운 모습을 모두 나눈 동료이자, 내 조직생활의 첫 단추였다. 그리고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미스테리한 날들을 앞두고 있다. 그 미스테리한 날들 속 우린 옛 동료로서 서로에게 어떤 면들을 더 보여주고, 어떤 순간들을 더 나눌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유형의 고민, 선택, 물음들이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먼 훗날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


"G가 운영하는 인생상담소가 있어. 고민이 있으면 우선 그곳에 가봐. 진짜 재밌어. 네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답이 있을지도 몰라."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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