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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Feb 23. 2023

N을 위하여 - 프롤로그

내 인생에 사랑을 준 사람들 - N을 위하여

 2014년 일본 TBS에서 방영한 드라마 'N을 위하여(Nのために)'는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 소설로, 이니셜 N을 가진 인물들이 각자가 사랑하는 N을 위해 저지른 범죄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선 과거의 아오카케 섬의 식당 '잔물결'의 방화사건과 현재의 스카이 로즈 가든에 사는 노구치-나오코 부부의 살인사건을 통해 각 인물들이 지키고자 하는 N은 누구인지, 어떻게 지키고자 했는지 그들만의 사랑법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N을 위해서였다.


 작품 속 인물들의 사랑법은 특이하고 특별하다. 특별한 사랑법의 중심에는 여자주인공 ‘스기시타 노조미’와 남자주인공 ‘나루세 신지’가 있다. 둘은 아오카케 섬에서 같이 자란 고교 동창생이다. 매번 사이좋게 장기를 두고 나란히 걷는 두 인물을 얼핏 봤을 땐 추억 속 첫사랑 상대를 떠올릴 수 있다. 아쉽게도 두 주인공의 사랑은 시시한 연애 정도로 맺어질 수 없었다. 그들에겐 연애 그 이상, 강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고차원적인 사랑이 필요했다.


 노조미는 아오카케 섬의 성이라 불리는 궁전 같은 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출장을 갔다가 내연녀를 데리고 아버지가 돌아온 날 노조미와 남동생,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난다. 아버지 없이 자립하지 못하고 미쳐가는 어머니, 양육비로 겨우 버티는 궁핍한 생활, 섬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집안 이야기까지. 노조미의 학창 시절은 점점 망가져간다. 나루세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전통 가업이었던 음식점 ‘잔물결’은 문을 닫을 예정이다.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현실의 무게는 대학 진학을 앞둔 10대들이 견디기엔 가혹했다. 그래도 둘에겐 ‘장기’라는 취미가 있었다. 매번 장기를 두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각자의 야망을 공유하며, 꼭 도쿄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서 섬을 나가자고 굳게 다짐한다.


 두 주인공의 감정은 나루세 집의 식당 ‘잔물결’이 활활 타오르던 어느 날 밤 고차원적인 사랑으로 발전한다. 폐업을 앞둔 잔물결에 누군가가 불을 질렀다. 그날 밤, 노조미는 사건 현장에서 나루세를 발견한다.


‘부모님의 이혼이 싫었니? 아니면 무너져가는 가업을 이어받는 게 싫었던 거야? 그래서 네가 불을 지른 거니?’


나루세를 가장 잘 아는 친구인 노조미는 몇 번이고 이렇게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노조미는 입을 닫고 조용히 나루세의 손을 잡았다. 나루세가 용의자로 지목된 후, 노조미는 진술을 위해 경찰서에 갔을  나루세를 감싼다.


‘저와 나루세는 언덕 위 정자에서 대학 장학금을 찾아보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잔물결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래서 나루세와 함께 언덕을 뛰어내려왔습니다.’


그날 경찰서에서 노조미는 나루세를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바로 ‘죄의 공유’다.


죄의 공유. 공범이 아니라 죄의 공유. 아무도 모르게 상대의 죄를 내가 반을 맡는 거예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요. 물론 상대한테도. 죄를 맡고 조용히 사라지는 거예요.


 5년 후 도쿄의 스카이 로즈 가든, 노구치-나오코 부부의 살해현장에서 둘은 다시 조우한다. 고교 시절 아오카케 섬에서 자신의 죄를 공유해 준 것처럼 나루세는 노조미의 죄를 공유한다. 나루세는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노조미가 원하는 대로 경찰에 진술해준다.


'아, 이번엔 내 차례구나. 지금은 5년 전에 받았던 사랑을 갚을 순간이구나.'


극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낭만적 이성애 로맨스보다 훨씬 무겁고 고차원적인 이야기다. 주변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이 사랑법은 기괴하다고 느껴질 있을 정도로 어둡고 무겁다. 하지만 현실 사랑보다 순수하고 진실하다. 그래서 'N을 위하여'를 청춘 순애 미스테리물이라고 하는 걸까.


작품을 보며 나를 스쳐간 수많은 N들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법은 다양하다. 나는 모두가 각자의 N들을 향한 고유한 사랑법이 있다고 믿어 왔다. 그리고 그동안 만난 N들을 제각각의 이유로 사랑했고, 그들에게 맞는 사랑을 베풀어왔다.


나를 신뢰해서 이 동아리에 들어왔고, 그깟 축구 동아리야 안 해도 된다는 후배의 말에 한 학기 동아리 평가자리에서 엉엉 울었던 일, 어머니를 잃고 술 없이 잠들기 어렵다는 K선배의 집 앞에 몰래 맥주를 숨겼던 일, 괴로운 조직생활 때문에 퇴사하는 가장 친한 동료 H에게 '가지 마' 대신 '축하해'라는 말을 골랐던 날, 사고로 친구를 잃은 Y언니를 매일 생각하느라 눈물 삼켰던 무수한 날들까지.


어찌보면 사소하고 미련하고 바보 같고, 그래도 따듯하다고 생각하는 N들을 위한 내 사랑법을 이야기하고 싶다.


앞으로 써내려 갈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뜨거워졌다면, 그 온기로 따듯한 밥 한 끼를 지어줬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 인생에 사랑을 준 사람들―N을 위하여


(연재될 이야기 속 인물들을 구분하기 위해 A-Z 중 실제 이름의 이니셜로 표현할 예정입니다.)


(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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