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 <좁은 문>
나는 기도할 수도 잠잘 수도 없다. 어둠에 싸인 정원으로 다시 나갔다. 내 방에 있어도 집 안 어디에 있어도 두려움을 느낀다. 슬픔에 젖어 나는 그를 남겨 두고 돌아왔던 문까지 가 보았다. 헛된 희망을 품고 그 문을 다시 열어 보았다. 혹시 그가 되돌아와 있다면! 그를 불러 보았다. 어둠 속을 더듬어 보았다. 그에게 편지를 쓰려 다시 돌아왔다. 나는 이 애통함을 받아들일 수 없다.
<좁은 문>, 알리사의 일기, 202쪽: 더클래식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기독교적 신념과 젊음이 주는 열정의 갈등을 다룬 문제적인 작품으로 출간 당시에도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남녀 주인공인 제롬과 알리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신앙에서 비롯된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특히 알리사의 경우 성경이 은유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자처하며 자신의 마음을 억압하는 고행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제롬을 향한 마음을 접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은 것으로 묘사되어 더욱 안타깝다. 시선에 따라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읽힐 여지도 다분하다. 알리사의 종교에 대한 집착과 광적인 변화는 작가의 기독교에 대한 시선을 드러내며 이 소설을 매우 논쟁적인 자리로 이끌고 있다.
소설 안에서 알리사는 유일하게 갇혀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스스로를 종교 안에 가둬버린 인물로 그려졌지만 사실 처음부터 알리사는 갇혀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좁은 문>의 화자가 제롬 자신이며, 그의 시선과 기억에 의지하여 소설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물론 알리사의 편지글과 후반부에 일기가 덧붙여져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알리사의 글들이 드러나기 전, 제롬이 알리사에게 반하는 일화가 있었던 즈음의 그의 목소리는 생략되어 있으며 편지글과 일기 또한 제롬의 시선으로 취사선택된 것이다.
제롬은 알리사를 하늘에 존재하는 천사처럼 순결한 '진주(30쪽)'로 묘사한다. 어느 날 제롬은 방에서 홀로 울고 있는 알리사를 목격하고 "이 어린 생명을 두려움과 죄악과 인생으로부터 보호하는 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목표(23쪽)"라고 결심하며 알리사를 사랑하게 된다. 제롬의 사랑 역시 알리사에게서 종교에 대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를 통해 종교적 신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은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사는 다시 첫 구절을 인용해 이야기했고 나는 들어가기 힘써야 할 그 좁은 문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깊이 빠져든 몽상 속에서 그 좁은 문은 일종의 압축기처럼 그려졌다. 나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썼는데, 그 고통은 천국의 지복을 미리 맛보게 해주는 것 같았다. 어느덧 그 문은 알리사의 방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자신을 숙이고 안에 남아 있던 모든 이기심을 비워 버렸다. (중략) 나는 모든 고행과 슬픔 너머에 내 영혼이 그토록 갈망하던, 순결하고 신비하며 고결한 다른 기쁨이 존재하리라 상상하며 그것을 예감했다. <좁은 문, 27쪽>
제롬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상징적으로는 알리사를 특정한 이미지에 가둔 인물에 불과했음은 문장 곳곳에 드러난다. 사실 <좁은 문>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 전부가 알리사를 가두었다고 볼 수 있다. 알리사의 아버지는 십 대에 불과한 알리사에게 자신의 상실감을 오롯이 투사하며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생들에 비해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알리사는 어머니가 떠난 빈자리를 메우며 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챙긴다. 알리사의 의사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채, 주변 어른들은 당연히 제롬과 알리사가 사랑하고 있으며, 결혼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상처만을 남기고 남자와 도망간 어머니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 알리사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알리사의 일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가 자신의 감정에 얼마나 확신이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헷갈리는 것은 제롬 역시 마찬가지다. 알리사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한 채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파리로 떠난 제롬은 알리사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알리사는 편지글에서 제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는 한다. 그러나 막상 대면했을 때 당황스러울 만큼 그들은 어색해지고 만다. 마음만은 절절했던, 관념 속의 상상연애라고나 할까. 고모에게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저를 칭찬해 주셔야(99쪽)"한다는 알리사의 편지글 이전에도 그가 주변의 기대에 부흥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쉽게 느낄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알리사가 제롬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고백하는 사랑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알고 싶았다. 마음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되어 그러한 편지를 쓴 것일까. 아니면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편지를 쓴 것일까. 그것은 나중에 알리사의 일기를 통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제롬은 알리사와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파리에서 공부하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군에 입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종교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예전의 종교적 신념에서 약간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때로는 알리사로부터 받는 편지 앞에서도 담담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도 한다. 자신과 알리사의 관계가 현실적인 것이 아님을 인지한 것이다. 알리사는 제롬과는 정확히 반대 지점으로 향한다. 그의 사랑과 종교적인 신념은 고행으로 접어들고, 때로는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알리사가 예상보다 더 불행했다는 것은 그의 일기를 통해 드러난다. 알리사의 선택은 천국으로 향하는 '좁은 문'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를 학대했던 감옥에 불과했다.
그러나 종교적인 '좁은 문'이 아니라 세속적인 삶에서도 알리사가 선택할 수 있었던 문은 애써 힘껏 열어야 할 좁은 문이거나 아예 사방이 막힌 벽뿐이었다. 알리사가 쓴 일기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그저께 르아브르를 출발, 어제 님에 도착. 나의 첫 번째 여행이다!(179쪽)"
느낌표 하나에 참 많은 것이 담겨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제롬이 이탈리아에서 보낸 편지를 읽으며 상상으로 여행을 떠났던 알리사가 실제로 여행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유일하게 몇 권의 책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었던 알리사는 그마저도 제롬의 시선에 의지해 책을 읽어나갔음이 떠올랐다. 나중에는 종교서적 서너 권 말고 다른 책은 스스로 차단해버리기도 했다. 그것이 알리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일은 출구 없는 막다른 곳으로 이어진 닫힌 길로 향하게 했다. 알리사에게는 자신만의 시선, 자신만의 언어를 가질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고 마음이 약하며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가장 먼저 자신을 통제하는 것으로 일말의 안정감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일기 속에 담겨 있는 알리사의 목소리는 고통에 절여져 혼돈 그 자체였다. 마음마저 숙연해지는 기록 앞에서 낭만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져버린 한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사랑과 종교라는 어두운 감옥 속에 갇혀버린 한 여성의 가느다란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