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 소설 <야성의 부름>
소설 <야성의 부름>은 개가 주인공인 특별한 소설이다. 무려 100년도 더 된 소설인데 세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세련된 문체로 독자들을 낯선 세계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작가 잭 런던은 젊은 시절 통조림 공장, 원양어선 선원 등등 여러 일을 전전하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종군기자로 한국에도 방문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작가 자신이 알래스카 클론다이크에서 금을 캤던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이라 더욱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거친 대자연 속 야성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밀러 판사의 장원에서 살아온 늑대개 벅은 자신을 왕이라 여기며 귀족적인 삶을 누렸다. 그러나 도박에 빠져 돈이 필요했던 정원사 조수에 의해 납치되어 팔린 뒤 그는 즉시 물건으로 전락한다. 벅은 밧줄로 목이 조인 채 야만적인 사람들을 여럿 지나쳐갔다. 그중 최고봉은 붉은 스웨터를 입은 사내였다. 그는 벅을 길들이기 위해 거의 죽기 직전까지 곤봉으로 두들겨 팼다. 무자비한 매질은 야성을 깨우는 야만일 뿐이었고, 벅은 길들지 않았다.
그 곤봉은 하나의 계시였다. 그것은 그가 원시법의 세계로 입문하는 첫걸음으로, 그는 이미 반쯤 그 길로 들어섰다. 그래서 벅은 겁먹지 않고 그런 것에 직면하면서 그의 본성이 각성시킨 온갖 잠재된 재간을 동원해 맞섰다. <잭 런던, 야성의 부름, 19쪽>
썰매개가 된 벅은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든 복종했고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질서를 빠르게 배워갔다. 그 모든 일들이 벅의 본성을 깨웠고, 그의 조상이 야생에서 살아왔던 방식 그대로를 깨닫게 했다. 썰매 끄는 일을 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비를 지나는 동안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스피츠는 틈만 나면 벅을 공격했다. 벅은 스피츠와의 대결을 피하지 않았고, 죽기 살기로 싸워 스피츠를 이겼다. 이후 벅의 무리는 주인이 바뀌면서 요령 없이 무거운 짐을 싣고 끝없이 이동해야만 했다.
벅과 무리의 개들은 피로에 찌들다 못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얇은 얼음 위를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벅은 재난을 예감하고 주인의 명령을 처음으로 어겼다. 무자비한 매질도 무감했다. 벅을 향한 터무니없는 매질을 보며 분노와 동정을 느낀 새로운 주인 손턴은 벅을 구조하기에 이르렀다. 손턴은 벅의 유일한 사랑이자 마지막 문명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틈만 나면 벅은 숲으로 달려가 자신을 부르는 야성의 소리를 찾아 헤매었다. 벅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의 주인을 찾았을까.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나는 갑자기 달리고 싶어졌다. 때는 달 밝은 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산속을 마구 달리는 것이었는데, 그 산이라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다. 지리산도, 한라산도 아닌, 동네에 있는 작은 동산. 이 상상에 이름을 붙이자면 '야성을 모르는 자의 소박한 달리기' 정도 붙이면 되려나. 글쎄, 내가 벅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벅만큼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 계산하지 않고 극한까지 맞붙어본 자만이 벅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피 튀기는 육체적인 묘사로 점철되어 있는 소설이지만 매우 정신적인 것을 그려낸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야생에서 벅이 만난 것은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회적인 역할, 그 가면들이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나는 원래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달리기도 결국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