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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Sep 14. 2023

구원서사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

“겨우 한 명을 구하겠다고?”
“아버지는 한 명이라도 구해본 적 있어요?”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딱 한 명을 구하는 일이야.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따지게 되거든.”     


요즘 심심할 때마다 보는 드라마 JTBC <킹더랜드>의 6화에 나오는 대사다. 이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은 거의 클리셰에 가깝다. (클리셰 좋아함^^) 남자주인공 이름이 무려 ‘구원’. 그는 ‘킹더랜드’라는 대기업을 물려받기 위해 배다른 누나와 경쟁하는 서자 도련님이다. 그에게는 어머니와 관련한 심리적 내상이 있어서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을 일부 기억하지 못한다. 트라우마 때문에 웃는 얼굴을 극혐 하기도 한다. 돈 많고 외모도 출중하지만 외롭게 자라 까칠하고, 관계에 서툴다.  


그의 상대역인 여자주인공의 이름은 ‘천사랑’이다. 그는 한 달짜리 계약직으로 ‘킹호텔’에 입사해 엄청난 능력으로 정직원을 꿰찬 뒤 호텔리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한다는 루트만 밟는 인물이다. 돈 없고 빽도 없고, 고아라서 할머니와 자랐지만 그늘 없이 해맑고 명랑하다. 본부장인 구원과의 대화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인물이다. 드라마를 절반밖에 보지 못했지만 천사랑은 구원과 결혼하거나 약혼하여 신분상승을 이룰 예정이다. (아마도?)


드라마를 소비하는 계층의 욕구에 맞추어 요즘은 마냥 의존적인 신데렐라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등장인물 구원은 천사랑과 결합하는 것으로 여자주인공을 구원할 수 있는 있는 인물이지만 천사랑으로 인해 구원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구원의 심리적인 결핍, 즉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것이며 정서적인 구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원과 천사랑 두 인물 모두 완전하지 않기에 가능한 설정이며,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면 충분히 신분상승 할 수 있다는 이 사회의 판타지를 반영한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킹더랜드>처럼 로맨스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웹소설의 기본적인 얼개와 꽤 닮아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평범한 제인이 현명하고 단단한 지식인 여성으로 성장한다는 점, 이후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괴팍하고 치명적인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귀족 로체스터를 사랑하게 된다는 점, 그와 결혼하여 신분상승을 이루고 로체스터의 심리적인 구원자가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이야기의 핵심 키워드는 구원서사와 그에 따른 신분상승이다.


다만 <제인 에어> 속 구원의 이미지는 대중매체의 그것보다 훨씬 종교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구원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며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도달해야 할 종착지이다. 샬럿 브론테는 구원을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인해 가능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인이 로체스터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가 몸과 마음이 망가진 그와 결혼하게 되는 것 또한 이러한 기독교적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으로 제인 역시 어린 시절 구원받은 경험이 있었다. 야성을 버리지 못하고 로우드 학교로 이주하게 된 제인에게 본보기가 되어주는 템플 선생과 헬렌 번스가 보여주는 신을 향한 믿음은 제인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삶의 지향점이었다. 헬렌 번스의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는 모습은 제인의 삶에서 야성을 버리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할 만큼 큰 영향을 주었다. 


반대로 로우드 자선학교의 경영자인 브로클허스트의 위선과 자신의 선교 행위에 방점이 찍혀 평안을 이루지 못하는 세인트 존의 모습을 통해서는 종교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결말에 이르러서 세인트 존은 자신의 삶과 종교적인 가치를 일치시킨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구원이 특별한 행위에 있지 않으며 일상적이며 보편적인 삶 속에서 인류애적 사랑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종교적인 메시지를 소설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인 에어는 자신의 욕구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을 발설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모든 행동을 스스로 생각해 판단하여 실행한다. 제인은 주체적이고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캐릭터지만 과연 스스로 해방을 이루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제인 역시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을 가지고 있었다. 로체스터의 부인에 대한 묘사에서도 드러나듯 야성이 여성에게 존재할 때, 그 여성은 치명적으로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광적인 짐승과 같은 존재로 평가된다.      


광인은 으르렁거렸다. 흐트러진 머리털을 얼굴에서 젖히고 방문자들을 사나운 눈길로 노려보았다. 나는 그 자줏빛 얼굴, 그 부어오른 이목구비를 기억하고 알아볼 수 있었다. (중략) 광인은 뛰어 덤벼 로체스터 씨의 목을 잡고 뺨을 물려고 덤볐다. 그들은 격투를 했다. (중략) 그러고 나서 로체스터 씨는 구경꾼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쓸쓸하고 쓰디쓴 웃음을 띠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 내 처 올시다.” 그는 말했다.

<제인 에어, 민음사, 2권, 111-112쪽>     


결혼 이후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을 드러내는 미친 여자는 존재만으로도 위험해 감옥에 갇힌다. 기독교적 가치를 온몸과 마음에 흡수해서 현명하고 지적이며, 헌신적이고 예측가능한 제인 에어는 안정적으로 가부장제에 안착한다. 신분 상승은 덤이다. 세인트 존이 제인에게 청혼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인 에어는 ‘아버지’의 가치에 길들여진 여성이었다. 그것이 남자주인공을 구원하는 것에 선행하는 제1조건인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여성이라면 기회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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