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숲오 2023 문학수첩
오래전 늦가을에 해인사의 템플스테이에 참가했었다. 1박 2일의 일정이었고, 부담되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일요일 첫 일정은 새벽 4시에 시작한다. 고요한 가야산을 스님이 힘찬 북소리로 깨웠다.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려 조용히 합장하고 북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고개를 드니 하늘 아래 바로 내 눈앞에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보였다. 짙푸른 하늘에 박힌 별이 일곱 개의 보석처럼 빛났다.
새벽하늘에서 보았던 북두칠성처럼, 『꿈꾸는 낭송 공작소』에도 보석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북두칠성이 옛사람들의 길라잡이이듯, 『꿈꾸는 낭송 공작소』는 지금 사는 사람들에게 길라잡이 책이다. 이숲오 작가는 성우이며 시 낭송가이며 시 낭송 강의를 한다. 작가의 약력이나 제목만 보고는 낭송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꾸는 낭송 공작소』는 낭송 이상을 꿈꾼다. 이숲오 작가는 시와 시낭송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 뛰어나다. 이 세 가지가 훌륭하게 어우러져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얻은 것들을 세세하게 쓰고 싶지만, 곧 읽을 독자들을 위해 북두칠성의 일곱 개의 별처럼 일곱 개의 소감만을 담았다.
1. 『꿈꾸는 낭송 공작소』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은 모두 이숲오 작가이다. 소년은 이숲오 작가의 과거이고, 시치미 리더는 이숲오 작가의 현재이며, 노인은 이숲오 작가의 미래이다. 그래서 등장인물은 이름이 없다. 노인이 자신의 기록을 소년에게 남기듯, 이숲오 작가는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남긴다.
2. 노인의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삶의 좌표를 그린다. 우리는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어떻게’이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하나요?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버나요? 어떻게 하면 좋나요? 하지만 ‘왜’라는 질문이 배제된 ‘어떻게’는 그저 뜬구름 잡기이다. 결국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는지, ‘왜’ 돈을 잘 벌어야 하는지, ‘왜’ 좋은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마치 기초 공사를 부실하게 한 건물의 균열에 약간의 시멘트로 땜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3. 적절하게 스며드는 비유는 이미지로 형상화되면서 이야기가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게 한다. 예를 들으면 만원 지하철을 설명할 때, 이숲오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팽팽한 스프링이 장착된 동전 케이스에 동전을 밀어 넣듯 소년은 지하철에 올랐다.’ 가장 좋은 소설은 글로 읽어도 영화처럼 보이는 소설인데, 『꿈꾸는 낭송 공작소』가 그런 소설이다.
4. 작가는 언어유희의 천재이고, 단어의 어원과 쓰임에 대해 탁월하다.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읽으면서 단어의 유래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고, 언어유희를 통해 단어를 더 깊이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단어에 대한 사랑이며 결국 그 단어를 쓰는 나에 대한 사랑이 되었다. 유명한 시낭송가인 이숲오 작가는 시낭송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시(詩)낭송 = (時현재성)-시(始처음)-시(示관찰)-시(施나눔)-시(是진실)’ 시낭송에 탁월하지 않다면 이런 다섯 가지의 언어유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5. 공자의 「논어」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통해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詩에 대한 철학을 넣었다. 마침 내가 「논어」를 읽을 예정이고, 「시학」을 읽은 후라서 더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고대 그리스는 詩에서부터 시작한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 일리아스라는 서사시가 있었고, 그다음에는 감성을 노래하는 서정시가 주류가 되었다. 시를 가슴에 품고 사는 그리스인들은 역사와 철학과 정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공자도 논어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했다. 공자와 대화를 하려면 시를 공부해야 했다. 그 대상이 아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시를 안다는 것은 공감 능력과 소통 능력을 의미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6. 좋은 시의 소개는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더 돋보이게 한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은 물론 에드거 앨런 포의 「에너벨 리를 찾아서」 등 이미 알고 있는 시가 있어서 편안하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휠덜린이나 요제프 어틸러를 통해 낯설지만 유럽 거장의 시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몽테뉴의 「수상록(Essais)」 서문을 소개한 것은 수필을 공부하는 나로서는 너무 반가운 내용이었다.
7. 현재를 선물 받은 우리에게 살아있음이 얼마나 큰 기쁨과 환희인지 일깨워준다. 노인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그를 위해 시를 녹음하면서 오히려 희망을 품고 삶에 애착을 느낀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소진한다. 현재(present)는 잠시 머물며 이내 곧 과거가 된다. 작가는 새롭게 반복되는 현재가 얼마나 큰 선물(present)인가를 『꿈꾸는 낭송 공작소』를 통해 말한다.
그 외.
가장 좋았던 구절은.
‘낭송은 연설도 아니고 강연도 아니지, 무엇을 설명하려고 애써도 안 되고 무엇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네. 낭송자가 청자와 교감하려는 의지와 소통의 리듬을 놓치게 되면 균형이 깨지면서 위압감을 주며 그런 부작용이 드러나게 되는 걸세.’(p. 164)
보석이 촘촘히 박힌 왕관처럼 『꿈꾸는 낭송 공작소』에는 좋은 구절이 정말 많다. 내 책에도 플래그가 촘촘하게 붙여져 있다. 그중에서도 이 구절을 뽑은 이유는 소통과 동감이 초보 수필가인 내가 가져야 하는 자세라서 더 와닿았다.
‘한여름의 이야기’인 『꿈꾸는 낭송 공작소』에 담고 있는 것은 ‘한 편의 인생’이다. 정해진 길을 가기보다는 ‘나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에움길(빙 둘러서 가는 길) 속에 햇살도 만나고 구름도 만나고 비도 만난다. 우리는 그 속에서 성장한다.
2023년 여름에 만난 『꿈꾸는 낭송 공작소』는 나에게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