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는 예술과 역사,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깃든 양림동이 있다. 흔히 ‘문화예술인의 거리’라 불리는 이곳은 근대문화유산과 현대 예술이 공존하는 동네이다. 출장차 처음 광주를 방문했을 때, 나는 양림동을 둘러보았다. 빨간 벽돌의 빵집을 지나 민속문화재인 이장우 가옥을 둘러보고 근처 한희원미술관에 들러 그림도 감상했다.
양림동의 골목길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거의 없어 서울 서촌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양림동은 그보다 더 차분하고 고요했는데 특히 나이 든 어르신들의 뒷모습이 뒤뚱뒤뚱한 펭귄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펭귄마을의 폐품을 이용한 작품들이 곳곳에 스민 예술적 분위기가 양림동 골목의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두 번째 광주 방문은 출장 대신 여행이었다.
처음의 짧은 방문이 아쉬워 이번에는 제대로 둘러보자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리던 시기였다. 여기에 광주 버스킹 월드컵 공연까지 더해져 도시는 축제의 열기로 가득했다.
10월의 광주는 날씨도, 문화 행사도 여행자의 마음을 충족시키기에 완벽했다.
비엔날레는 본래 2년에 한 번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를 뜻한다. 광주에서는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번갈아 열리는데, 국제적 규모의 전시가 주는 활기가 도시 곳곳에 배어 있었다. 특히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곳은 광주시립미술관이었다.
‘곡물집: 커뮤니케이션 포스터 전시’
‘생태미술 프로젝트’
‘추상의 추상’
그리고 한희원의 개인전 ‘존재와 시간’까지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전시들이 한 공간에서 이어지며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한국 미술에 대한 나의 지식은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백남준처럼 교과서에 등장하는 몇몇 화가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광주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희원: 존재와 시간〉 전시를 보고, 예전에 출장길에 잠시 들렀던 양림동의 한희원 미술관이 떠올라 반가웠다.
소박한 작업실 같은 분위기의 미술관과 달리, 이번 기획전에서는 작품을 차분히 감상할 수 있어 ‘광주 대표 화가’라는 이름에 자연스레 무게가 더해졌다.
그 순간 나에게도 작은 친밀감과 기대가 스며들었다.
한희원은 1955년 광주 출생으로 조선대학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한 시인이자 화가이다.
그는 45년간 예술 활동을 통해 독창적이고 서정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출처 k&l museum)
한희원은 양림동에서 성장하며 그곳의 정서를 작품에 담았고, 이후 자신이 직접 양림동의 작은 한옥을 구입해 미술관으로 운영하며 지역과의 연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출처: ktriptips)
그래서 전시회 초반에 그의 초기작에서 양림동 풍경과 농민들의 삶, 그리고 변화하는 마을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투박하지만 진솔하게 담겨 있었다.
이후 그는 해외 트레비소(이탈리아)에서 활동하며 작품 분위기가 어두워졌고, 사회·민중에 대한 관심이 내면 성찰로 옮겨가면서 노년기의 자화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파란색 계열을 많이 사용했는데, 피카소의 청색 시대(1901–1904년 우울한 주제와 파랑·청록 계열의 단색만 사용해 표현된 작품: 출처 위키백과)를 연상시키는 색감이었다.
나는 그동안 미술관에서 한두 점의 작품만 감상하는 데 익숙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인생 전반을 따라가며 작품 세계가 변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한 권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경험과 비슷했다. 마지막 작품 앞에서는 친구와 함께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림에서 전해지는 깊은 외로움과 고통이 너무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광주는 매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양림동의 조용한 골목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의 미디어아트 속에서,
그리고 축제처럼 들썩이는 비엔날레의 현장에서
나는 문화도시 광주의 깊이를 차곡차곡 경험해 나갔다.
만약 미술을 좋아한다면,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여행을 가보길 권한다.
양림동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엔날레, 시립미술관 그리고 한희원미술관까지—광주는 분명 당신을 예술로 매료시킬 것이다.